[김재필 '에세이'] H에게- 노년에 부자가 되는 법 - 시사위크 (sisaweek.com)
[김재필 '에세이'] H에게 - 노년에 부자가 되는 법 /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뉴욕의 빵장수이며 철학자인 노아 벤샤는 ‘빵장수 야곱의 영혼의 양식’에서 자신이 만든 야곱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입을 빌려 “바라는 것을 줄이면 이미 부자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는 것보다, 그것들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네. 옳은 말 아닌가? 바라는 것, 즉 욕심을 줄이지 않고는 누구도 부자가 될 수 없네. 주위에 보면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충분히 부자인데도 입만 열면 ‘돈 돈 돈’ 하는 비렁뱅이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평생 발버둥 쳐도 부자가 될 수 없어. 반대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욕지족(少欲知足)하면 진짜부자가 될 수 있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노인이 되어서도 바라는 게 많아서 ‘부자(富者)’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드네.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갖고 있는 재산이면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고 놀아도 충분하니 이제 돈 버는 일은 그만 두고 함께 놀자고 농을 걸면 화를 내지. 그들은 나처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걸 이해하지 못해. 물론 각자 처해 있는 상황과 세계관이 다르니 그들의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어. 사실 나이가 들면서 바라는 것 하나 둘 줄이면 돈 쓸 일도 함께 줄어들거든. 자식들 결혼시켜 내보내고 아내랑 둘이 살고 있는 내 경우 책 사서 읽고, 사진 찍고, 가끔 출사 여행 가는 데 드는 비용이 지출의 전부야. 그러니 “바라는 것을 줄이면 이미 부자” 라는 야곱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노년을 즐겁게 사는 데 결코 많은 것들이 필요한 건 아니네. 주위를 둘러보게나. 돈 많은 노인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을 걸세. 가진 게 적어도 세속적인 욕망과 유혹 따위 코웃음 치면서 당당하게 사는 노인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이 진짜 부자야.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꼭 부자는 아니야. 왜냐고? 불행하게도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뭔가를 원하거든. 자신이 원하는 걸 당장 얻지 못하면 금방 풀이 죽지. 지금 우리 주위에 노인들에게 별로 긴요하지도 않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업들이 돈 벌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상품과 광고의 유혹에 넘어가는 노인들이 너무 많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면 바라는 것을 줄여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년(老年)이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하네. 혼자 책 읽고, 혼자 음악 들으며, 혼자 시간 보낼 줄 알아야 해. 옆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줄어들어도 크게 외롭지 않게 해줄 취미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고. 나를 알아주는 친구인 지음(知音)*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 무슨 일이든 혼자서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지. 자주 짬을 내서 주위를 돌아보게나. 여기저기 아름다운 것들이 널려 있네. 그것들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 보게. 세상사의 압박에서 해방되는 행복한 순간들을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을 걸세. 괴테의 말도 잊지 말게.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논리적인 말을 한 마디씩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부자(富者)가 되는 법을 일러주는 최서림 시인의 시 「시인의 재산」을 소개하네. 시인처럼 노인들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모두 내 것이라 생각하고 살면 노년의 삶이 훨씬 여유가 있을 거라 믿네. 바라는 것을 줄이면 이미 부자라는 말 잊지 말게.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빈 하늘은 내 것이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새털구름도 내 것이다/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내 것이다/ 너무 높아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다 내 것이다.”
글=김재필 박사ㅣ시사위크 2021.08.25
* 지음(知音):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종자기(鐘子期)가 죽은 후, 그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 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렸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 2022.03.1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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