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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자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2022.03.17)

푸레택 2022. 3. 17. 14:08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자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daum.net)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자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A : 때로는 힘을 빼고 자연에 맡겨두는 ‘대담한 실험’ 필요(22) 제이미 로리머(Jamie Lorimer, 1979∼)20세기 자연 보전 논의·실천주로 ‘야생’ 보전 관점서 접근동·식물 개체수 조절 등 집중최근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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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자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A : 때로는 힘을 빼고 자연에 맡겨두는 ‘대담한 실험’ 필요

(22) 제이미 로리머(Jamie Lorimer, 1979∼)

20세기 자연 보전 논의·실천
주로 ‘야생’ 보전 관점서 접근
동·식물 개체수 조절 등 집중
최근엔 ‘재야생화’ 개념 도입
인간의 간섭 전면적 배제통한
생태 프로세스 회복이 주목적
‘질서’부여하겠단 욕망 버리고
개체별 본성 발휘토록 유도해
열린태도로‘종말’헤쳐나가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교외의 오스트바데르스플라선(Oostvaadersplassen·OVP)은 1968년 완공된 간척지다. 산업 용지로 야심 차게 조성된 이 땅은 이후 농업 용지가 됐지만 끝내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 버려졌다. 그런데 쓸모없어진 간척지에 회색 기러기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어 물새들이 나타났고 저어새 같은 희귀종도 출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1986년 OVP를 국가 자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자연 복원 계획 수립에 들어간다. OVP 복원 담당 기관은 산림청, 복원 총책임자는 고생태학자이자 보전 운동가인 프란츠 베라였다.

베라는 소와 말을 풀어놓는 것으로 OVP 자연 복원 활동을 시작한다. 고대의 멸종한 소와 말에 가장 가까운 종을 일부러 동물원에서 찾아 데려왔다. 1992년에는 붉은 사슴도 들여왔다. 소, 말, 사슴은 과거 OVP에 서식하던 종이기도 했지만, 베라는 이들이 물새처럼 초식동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의 섭식 행위가 처음에는 곤충을, 이후 장기간에 걸쳐 크고 작은 초식동물을, 나아가 육식동물까지 불러들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베라는 이로써 생태계 먹이 그물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소와 말을 도구로 복원 프로세스를 촉진해 OVP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뜻이었다.

영국의 환경 지리학자 제이미 로리머는 베라의 원대한 꿈에서 전 지구적 생태 위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희망을 읽어 낸다. 베라와 그의 동료들이 제시한 ‘재야생화(rewilding)’는 자연을 보전하려는 기존의 시도들과 달리 인간-자연의 역동적이고 탐색적이며 민주적인 관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 야생 보전에서 재야생화로

자연 보전은 인문 지리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에서 오랫동안 다뤄 온 주제다. 어떤 자연을 어떻게 보전할 것이냐의 문제는 인간 사회가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이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드러낸다. 20세기 자연 보전에 대한 논의와 실천은 주로 ‘야생’ 보전의 관점에서 이뤄졌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의 자연이 존재한다는(또는 존재해야 한다는) 상상, 산업화와 제국주의로 인한 자연 지역과 생물 종의 급격한 소실 등은 보호 지역을 지정해 생물 종 다양성을 보전하려는 목표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코끼리나 호랑이 같은 대형 야생동물을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거주해 온 원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이들의 안전과 생계를 희생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은 야생 담론에 기반한 보전 전략의 문화적·정치적 문제점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경제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한편 로리머는 비인간 자연의 행위성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권력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야생 보전에 국한된 기존의 논의를 넘어서고자 했다. 기존에는 일정 지역 내 동식물의 개체 수와 그들 간의 비율을 조정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생태 프로세스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재야생화는 이 같은 새로운 보전 방향의 하나로, 생태 프로세스를 회복하는 데 보전의 목적을 둔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1만여 년에 걸쳐 지금의 자연경관이 만들어졌듯 생태 프로세스를 활성화해 자연을 복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의 간섭을 전면적으로 중지하기도 하고, OVP의 사례처럼 초식동물을 도입하기도 한다. 1995∼1996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도입된 늑대는 재야생화의 목적을 잘 보여 준다. 공원 측에서는 당시 멸종 상태에 이르렀던 늑대를 도입해 지나치게 불어난 말코손바닥사슴 개체 수를 조절하고, 생태 네트워크를 연결해 그 프로세스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OVP는 유럽에서 시행된 재야생화의 대표 사례다. 몇몇 환경 운동가와 생태학자는 OVP가 보전의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재야생화는 농촌 인구 감소로 버려진 농경지나 동유럽의 옛 산업 지역을 값싸게 복원할 수 있는 유용한 제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전 운동가, 동물 운동가, 생태학자, 지역 주민들로부터 더 큰 반대에 부딪혔다. 보전 운동가들은 베라가 생태적 가치가 높은 희귀종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은 채 희귀종 서식지로서 OVP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우려했다. 생태학자들은 생태 프로세스에 대한 베라의 가설을 신뢰하지 않았고, 동물 운동가들은 OVP의 소와 말들이 추위에 굶어 죽고 있다며 네덜란드 산림청과 베라를 고소했다.

◇ 대담한 실험을 통한 새로운 미래

로리머는 OVP의 사례를 통해 인간-자연 관계가 근대적 이분법 외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읽어 낸다. OVP의 재야생화는 근대적 자연 보전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사회, 사육-야생의 이분법적 범주로 귀속되지 않는다. OVP는 인간의 행위로 만들어졌지만 새, 소, 말이 자유롭게 먹이 활동을 하는 자연의 공간이다. 또한 OVP의 소와 말은 동물원에서 데려온 사육동물임과 동시에 OVP에서 오랫동안 먹이 활동을 해 온 야생동물이기도 하다.

베라와 동료들은 OVP의 미래를 예단하지 않는다. 이들은 동물과 인간의 활동, 생태 프로세스가 전개되는 상황 등에 따라 OVP가 얼마든지 새로운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뜻밖의 상황을 생태 프로세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억지로 제거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로리머는 이 같은 탐색적 접근이 기존의 자연 보전 전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기존에는 생물 종을 위계화하고 예상 밖의 결과를 예외로 무시하는 등 인위적으로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OVP는 베라와 동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했다. 소와 말들은 기존의 개체와 다른 행동과 습성을 갖춰 갔고, 난데없이 흰꼬리수리가 해수면 아래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에는 300여 마리에 이르던 희귀종 저어새가 갑자기 사라져 OVP 실험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OVP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두 차례 위원회를 구성했고, 시민들은 방조제에서 OVP의 실상을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로리머는 OVP를 둘러싼 공론화 과정에서 자연을 보전하는 문제를 더욱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을 읽어 낸다.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려는 기존의 전략은 전문가들의 생물 가치 평가, 국가-지방-지역으로 내려오는 하향식 실천 계획 등으로 구성된 폐쇄적 체계다. 하지만 OVP를 둘러싼 논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론화에 참여해 새로운 보전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결 열린 체계다. 이런 점에서 로리머는 재야생화를 ‘대담한 실험(wild experiment)’으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다. 재야생화를 통해 뜻밖의 생태적 사건과 새로운 생태적 지식을 생산하고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류세의 자연 보전

재야생화에 대한 로리머의 관심은 1990년대 이후 인문 지리학에서 다뤄 온 ‘자연의 종말’ 논의의 연장선 상에 있다. 기후 변화, 멸종 위기, 환경 오염 등 인간 사회의 자연 착취가 가속화되면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의 자연’은 이미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리머는 전문가, 과학 지식, 대중적 상상 등을 통해 이해되는 ‘자연(Nature)’과 비전문가, 원주민, 신체적 지식, 비인간 행위자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자연들(natures)’을 구분한다. 또한 자연이 고정되거나 불변하지 않으며 행위자-연결망의 수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자연 보전이 하나의 고정된 이상적 자연을 상정한 채 이를 회복하거나 지키는 데 주력한다면, 재야생화는 다양한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의 활동을 통해 복수의 자연들이 생성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로리머에게 재야생화란 때로는 예상할 수 있지만 때로는 당혹스러운 미래의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탐색하는 새로운 인간-자연 관계의 장이다.

인간-자연 관계에 대한 로리머의 탐색적 접근은 세계의 불확실성과 변덕스러움을 강조하는 최근의 인류세 논의와 결합할 때 한층 유용하다. 인류세는 2000년대 초반 지구 시스템 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제기한 개념으로, 인간의 행위가 지구 환경을 바꾸는 근본적 동력이 됐음을 드러낸다. 로리머는 인류세 논의가 상기하는 지구 시스템의 불확실성과 비선형성을 감안해 재야생화가 인류세 시대의 새로운 환경주의를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는 인간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욕망과 관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로리머는 그 대신 소가 풀을 뜯어 먹는 행위처럼 다양한 행위자가 저마다의 본성과 역량을 발휘하도록 유도하고, 그 결과가 선사하는 미래의 모습을 열린 태도로 탐색해 보자고 제안한다. 이렇듯 로리머는 겸허하면서도 대담한 실험을 통해 자연의 종말과 인류세를 헤쳐 나가고자 한다.


최명애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조교수

■ 제이미 로리머

분야: 인문 지리학, 자연-사회, 동물 지리학, 사회 이론

사상: 다자연 지리학, 인간 너머의 지리학

주요 활동·사건: 스승 와트모어와의 만남(2005),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국제 심포지엄 참석(2019)


1979년 영국 출생의 인문 지리학자로, 인간-자연 관계를 다루는 환경 지리학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브리스틀대 지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2년부터 옥스퍼드대 환경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간 너머의 지리학으로 알려진 세라 와트모어의 수제자로, 과학 철학, 통치성 이론, 인류세 논의 등을 결합해 인간 너머의 지리학의 이론적·학제적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비인간 행위성과 비재현적 소통을 강조하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 해러웨이의 과학 철학, 통치성 이론 등을 폭넓게 횡단하며 인간-자연의 얽힘과 새로운 정치적·윤리적 관계를 모색한다. 특히 신유물론의 존재론적 전회를 지리학의 인간-자연 관계 연구에 적용해 ‘다자연 지리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로써 자연을 인간 사회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의 네트워크 수행을 통해 특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연(實演·enactment)되는 다중적 존재로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인간 너머의 지리학을 인류학적 현장 연구와 결합해 비인간 행위성, 비재현적 소통, 존재론적 전환과 같은 개념과 이론이 실제 인간-자연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탐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지난 15년간 영국의 생물 다양성 보전 논의, 스리랑카 코끼리 보전과 생태 관광, 네덜란드 오스트바데르스플라선 재야생화 등을 사례로 현장 연구를 실시해 왔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을 야생동물에서 세균으로 확장해 인간-세균의 변화하는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균은 오랫동안 위생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유산균 같은 유용한 세균을 인체에 적극적으로 재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로리머는 유럽과 북미의 프로바이오틱스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세균 관계가 죽임과 배제뿐만 아니라 살림과 공생 역시 포함하고 있음을 포착해 낸다.

[출처] 문화일보 2020.02.04

/ 2022.03.1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