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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그림 볼 줄 아는 남자, 그림 살 줄 아는 남자.. '취향' 갖고 싶다면? 많이 보고 많이 사라 (2022.03.16)

푸레택 2022. 3. 16. 21:52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그림 볼 줄 아는 남자, 그림 살 줄 아는 남자 | '취향' 갖고 싶다면?..많이 보고 많이 사라 (daum.net)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그림 볼 줄 아는 남자, 그림 살 줄 아는 남자 | '취향' 갖고 싶다면?..

두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수년 전부터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하러 다닌다. 문화센터와 CEO 모임은 물론 인터넷에서 미술사와 미학 강의를 듣는 한편, 미술관과 갤러리를 시간을 정해놓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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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피노(우)와 제프 쿤스, 2011년 한국에서 열린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전 오프닝. 출품작가이자 절친으로서 제프 쿤스가 동반했다.

 

[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그림 볼 줄 아는 남자, 그림 살 줄 아는 남자.. '취향' 갖고 싶다면? 많이 보고 많이 사라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수년 전부터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하러 다닌다. 문화센터와 CEO 모임은 물론 인터넷에서 미술사와 미학 강의를 듣는 한편, 미술관과 갤러리를 시간을 정해놓고 다닌다. 다른 한 남자는 이제 막 미술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큐레이터와 딜러 같은 미술인들과 친분을 갖게 됐다. 더욱이 그는 아트페어와 옥션을 통해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높은 안목을 갖게 되겠는가?


사실 그림 보는 안목에는 왕도가 없다. 그냥 많이 보면 된다. 그런데 많이 보는 것보다 더 빨리 출중한 안목을 가지려면? 사 봐야 한다. 그림을 사기 시작하면, 그림 보는 안목과 심미안은 괄목상대할 만큼 진화한다. 돈이 개입되면 그림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살아난다. 가짜를 사서도 안 되고, 투자 가치가 있는지도 봐야 하며, 잘못된 그림을 사서 낭패 보는 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중요한 미술사적 맥락은 물론 미술 시장의 최신 정보를 총동원해야 한다. 그림 보는 실력이 섬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는 PPR그룹 회장으로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다. 프랑스 외진 시골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중퇴한 피노는 서른 살 전까지는 미술을 향유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는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을 돕다가 27세에 ‘소시에테-피노’라는 이름의 목재 유통회사를 세운다. 이 회사가 현재 구찌, 입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푸마, 스텔라매카트니, 세르지오로시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갖고 있는 PPR그룹의 모태다.

피노는 컬렉션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이해가 쉬운 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작품, 즉 정물화나 풍경화 같은 쉽고 편안한 작품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인상파·입체파를 수집하게 됐고 지금은 피카소, 몬드리안,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신디 셔먼 등의 작품이 포함된 수천 점의 방대한 현대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1998년에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인수했다. 피노는 2003년 40년에 걸쳐 쌓은 그룹의 경영권을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에게 넘겨줬는데, 그 이유가 미술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이후 피노는 베니스에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을 만들고, 미술계 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피노는 세계를 돌며 자신의 컬렉션을 순회 전시했는데, 2011년 한국에서도 송은문화재단의 초대로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 : 고뇌와 환희(Agony and Ecstasy)’라는 전시가 열렸다. 피노는 전시 오프닝에 현대미술계의 최고로 비싼 스타 작가이자 출품 작가기도 한 제프 쿤스를 동반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예술가들과의 친밀한 삶이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줬는지 예술가를 대동하는 것으로 표명하곤 했다.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전은 공공미술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스펙터클한 전시로서 근간에 본 의미 있는 전시 중 하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중퇴한 목재상의 아들이 이룬 기념비적 컬렉션을 목도하면서 예술에 대한 취향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프랑수아 피노야말로 미술품 수집을 통해 미술 공부를 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미술품 수집으로 인해 자기 삶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예전에는 불확실했던 취향이 컬렉션의 경험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진화했고, 이젠 비평가의 조언과 유행을 무시할 만큼 자기 확신이 생겼다고도 했다. 이처럼 취향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취향은 항상 문화와 접맥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문화(culture)가 ‘cultivate(경작하다)’라는 용어에서 온 것처럼,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취향은 피눈물나게 갈고 닦아야 생긴다.

메디치 가문도 3대째인 로렌초 메디치 정도가 돼서야 비로소 예술 보는 안목이 가장 탁월해졌다. 1대 코시모 메디치는 산마르코 성당과 산타 크로체 성당 등 하드웨어를 만들었고, 2대 피에로 메디치가 비로소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대 로렌초 메디치는 본격적으로 진정한 미술품 컬렉터가 됐다. 인문주의적 교양을 폭넓게 지녔던 그는 학예 특히 신플라톤주의 철학 연구를 장려했고 그의 치세 아래서 결국 최고의 르네상스 전성기가 구가됐다. 그 덕분에 로렌초가 가장 ‘위대한 자’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

찰스 사치가 기획해 영국의 젊은 작가를 전 세계에 알린 전시 ‘Sensation(1997년)’의 포스터. 광고인답게 충격요법으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 그가 지향하는 현대미술의 향방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잘난 조상 덕분에 안목과 취향이 대대손손 전수되는 일이야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21세기의 메디치라고 불리는 찰스 사치(Charles Saatchi)는 조상이 아닌 부인들을(?) 잘 둔 덕에 세계적인 컬렉터가 됐다. 컬렉터라는 말로는 부족해 ‘스펙큘렉터(speculator+collector)’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을 정도의 대단한 컬렉터다. 그는 ‘사치갤러리’를 설립해 데미언 허스트를 위시한 소위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로 인해 영국이 새로운 미술 중심지로 떠올랐다.

무엇이 사치로 하여금 세계를 움직일 만큼 대단한 컬렉터가 되게 만들었을까? 사치는 유대계 이라크인 출신으로 3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던 이민자였다. 그는 그저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등의 미국 팝문화에 심취해 있었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런 그가 미술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여자들 덕분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술계 여자들과 사랑에 빠져 미술 보는 안목이 업그레이드됐다.

사치의 첫 결혼은 미술계 입문식이나 다름없었다. 첫 번째 부인인 도리스 록하트는 미술사를 전공한 미국인으로 미니멀리즘 분야의 유명한 미술과 디자인 전문 기자였다.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뉴욕 화랑을 자주 드나들며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계열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에서 새롭게 떠오르던 신표현주의 계열(줄리안 슈나벨, 산드로 키아 등)의 회화를 사들였다. 수년이 흘러 소장품 규모가 제법 커지자 1985년 집 근처의 한적한 고급 주택가에 있던 페인트 공장을 개조해 사치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을 오픈했다.

두 번째 부인 케이 하르텐슈타인 역시 미술잡지 기자였고 세 번째 부인은 국내 케이블TV를 통해서도 알려진 유명 요리사 나이젤라 로슨이었다. 모두 미술 관련 나름의 안목을 갖고 있는 여인들이었다. 프랑수아 피노와 찰스 사치 등 현대의 슈퍼컬렉터들은 돈을 이용해 미학적 기준을 변형시키고 예술을 투자와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예술에 대한 취향과 수집은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개념미술이 됐다.

미국의 심리학자 워너 뮌스터버거는 ‘컬렉팅, 그 못 말리는 열정’에서 말한다. “컬렉터는 미술품에 힘과 가치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미술품을 갖고 있음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상태가 향상되는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갖고 있으면, 그 작품의 가치가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진다고 믿는다. 좋은 미술 작품을 통해 컬렉터는 자신이 ‘뭔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당신이 지금부터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갖고 싶다면? 먼저 전문가의 생각을 벤치마킹하라. 대략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나만의 취향을 갖고 싶다면? 유행을 따르지 말고 내 직관과 시선과 열정을 따르라! 혹 나중에 사들였던 작품을 모두 되팔고 싶은 때가 오더라도 좋은 일이다. 내 취향이 일취월장한 것이니. 그림 볼 줄 아는 안목 값을 치른 셈 치면 된다.

글=유경희 미술평론가ㅣ매경이코노미 2015.10.12

/ 2022.03.1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