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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6)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런던의 산책자로 당신을 소환합니다.
당신은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고 썼지요.
그렇습니다. 런던은 당신에게 극과 이야기와 시를 들려주며 키운 어머니 같은 도시지요.
장석주
자기 삶을 스스로 세우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고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하고, 노력하고, 돈을 벌려고 애씁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거예요.
박연준
장석주 | 런던의 산책자
시대를 앞선 여성은 불행했어요. 남성이 기득권을 전부 거머쥐고, 남성 중심으로 규범과 질서가 짜인 세상에서 여성이 틈입할 여지는 없을 테니까요. 재능이 있더라도 여성은 이방인이나 주변인 취급을 받았지요. 버지니아 울프(1882~1941), 당신 역시 학자이자 비평가인 아버지를 두고,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 교육에서 배제됐습니다. 가부장주의의 뿌리가 깊은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완고한 관습에 갇힌 당신의 딱한 처지를 드러낸 사태겠지요.
비록 학교 교육의 수혜를 받진 못했지만 당신의 명민함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깨어났습니다. 당신은 고전들로 가득 찬 아버지의 서가에서 지적 능력을 키우고, 독학으로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익히며 자기 세계를 확장했어요. 독서 행위가 당신의 지성과 사유, 상상력과 통찰력,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는 바탕이 됐겠지요.
당신은 여성을 억압하는 세계를 향해 도발하고 그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는 조국이 없는 여자다. 나란 여자의 조국은 완전한 세상이다”라고 외쳤는데, 이는 여성 차별에 맞서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겠지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앞서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천부적인 것임을 알아채고 그걸 외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영국 모더니스트 작가와 지식인 모임인 ‘블룸즈버리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1912년 거기서 만난 레너드 울프와 결혼합니다. 1917년 남편과 함께 런던 리치몬드가에 있는 당신 집의 이름을 딴 ‘호가스출판사’를 창업해 꾸렸지요. 당신 부부는 이 집에서 1915년에서 1924년까지 살았어요.
호가스출판사에서 474종의 책을 펴내는 동안 당신은 이 원고 대부분을 읽고 인쇄 작업을 거들지요. 그런 분주함 속에서 고투하며 써낸 소설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올랜도》 등은 세계 문학의 반열에 들었고, 몇 편은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교과서로 꼽혔고, 《작가일기》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요. 당신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지병인 정신질환이 악화됐어요. 결국 당신은 59세 때 우즈강에 투신자살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당신은 1917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스물네 해에 걸쳐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남겼지요. 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당신의 일기를 읽으며 당신 문학의 발생론적 근거를 더듬어보려고 애를 썼어요. 당신이 무심코 쓴 구절에 내 마음이 울리곤 했습니다.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 _1934년 8월 30일 일기
당신은 ‘보람 있는 하루’의 근거로 글쓰기, 산책, 독서 세 가지를 들었지요. 당신은 날마다 이 세 개의 리듬 속에서 보람과 활력을 찾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왕성한 독서가이자 런던의 산책자였다는 것은 대중에게 덜 알려진 사실이지요.
당신은 런던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런던 사람’이지요. 버지니아 울프, 오늘 나는 런던의 산책자로 당신을 소환합니다. 작가마다 운명의 도시가 있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면, 카프카의 프라하,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 헤밍웨이의 파리, 폴 오스터의 뉴욕,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이상과 박태원의 경성(서울), 전혜린의 뮌헨… 버지니아 울프, 당신의 도시는 런던이겠지요. 당신은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고 썼어요. 그렇습니다. 런던은 당신에게 극과 이야기와 시를 들려주며 키운 어머니 같은 도시지요.
당신이나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라리사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은 ‘거리 배회’였어요. “난 당장에 연필 한 자루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 당신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창조한 작중 인물인가요? 아마도 당신은 글을 쓰다가도 연필 한 자루를 사기 위해 거리로 나선 일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당신 소설의 주인공 클라리사는 꽃이나 장갑을 사러 거리에 나섰고요. 클라리사는 당신의 분신, 그가 거리 배회를 좋아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어쨌든 당신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점과 극장, 수도원과 대성당들이 이어진 런던 거리를 산책했어요. 당신은 어느 산문에서 “런던 거리를 걷자.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자”라고 썼지요. 거리란 “기분들의 진열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진열장 속엔 우리 각자의 기분도 있겠지요. 런던은 이미 전원(田園)의 기억을 말살하고 어떤 고갈 속에서 “인간 생활이 절정과 급류로 치닫는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어요.
당신이 걸었던 런던의 전경은 어떨까요? “우뚝 솟은 돔 지붕, 도시를 수호하는 대성당, 굴뚝과 첨탑, 기중기와 가스탱크, 봄이든 가을이든 흩어질 새 없이 쉬지 않고 피어오르는 연기 등으로 촘촘히 짜인 혼잡한 도시”가 당신의 시야에 들어온 전경이었지요. 도심과 도심을 잇는 번화한 거리는 인파로 넘쳤어요. 거리에는 항상 천 가지의 목소리들이 아우성치고, 인파가 말 그대로 파도처럼 무자비하게 넘실대지요. 거리를 걸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아마도 “새들이 지저귀고 담비나 토끼가 앞발을 들고 멈춰 서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뭇잎 바스락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전원에의 꿈을 상실한 삭막한 런던 거리를 걸으며 “삶은 투쟁이고, 모든 건축물은 소멸하며, 모든 과시는 허영임을” 곱씹었겠지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구경거리들에 한눈을 팔며 당신은 자신을 옥죄는 신경쇠약과 모종의 불안을 누그러뜨렸겠지요.
버지니아 울프, 당신은 왜 그토록 거리 배회에 탐닉했을까요? 그 탐닉의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산책이 무엇인가를 물어야겠지요. 산책이란 무엇일까요? 그 도시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계절과 날씨, 빛과 분위기, 혹은 소음과 익명의 무리와의 충돌과 불규칙한 리듬에 자기를 맡기는 일이 산책이 아닐까요? 그건 생산성 지상주의에 대한 소극적 사보타주, 군중과 노동, 속도와 실리주의에 대한 저항. 걷는 이들은 무위(無爲)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제 고독을 찾지요. 고독은 걷는 사람에게 느린 사색을 제공하는 하나의 은신처가 될 테니까요. 그 보상은 부피가 없습니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리듬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기분의 전환, 존재와의 내밀한 교감, 모호한 시적 창조성의 산출 따위가 보상의 내역이지요.
지금 여기는 봄꽃이 다 지고, 산색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였어요. 우리보다 100년을 앞선 시대에 살았던 당신이 화창한 봄날 런던 옥스퍼드가를 걷는 광경을 상상해요.
버지니아 울프, 당신이 거주하는 천국도 산책에 맞춤한 곳이기를 바랍니다.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집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당신은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980년, 서울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우리 사이엔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네요. 짧고도 긴 시간입니다. 글을 쓰는 선배이자, 따르고 싶은 투사의 이미지로 당신을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쓰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저 자신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데뷔했는데, 세상은 저를 ‘글을 쓰는, 젊은, 여자’로 구분해 바라보더군요.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엔 제 이름 앞에 꼭 ‘젊은 여성 시인’이란 수식이 붙었어요. 우스운 건 누구도 ‘늙은 여성 시인’을 구분해 부르진 않는다는 거죠. 여성이 젊다면, 그러니까 젊은 여성이 전문적인 일에 뛰어들어 이름을 알리려 하면 세상은 꼭 딴지를 걸고 싶어 했어요. 인간의 기본값을 남성으로 상정해놓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관습 때문이었을까요? 영국 역사는 영국 남성의 역사라고 한 당신 말처럼, 이 시대의 관습은 남성의 관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버지니아, 여성이 남성보다 자신과 자주 불화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존 버거의 문장을 빌려볼게요.
“한 여자가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갖는 생각은 이렇게 타인에게 평가받는 자기라는 감정으로 대체된다. (중략)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어떤 것이 허용되고 어떤 것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규제의 지배를 받는다.” 1)
‘보이는 대상’으로 전락한,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여성들의 위치에 대해 논하는 존 버거의 글을 읽으며 당신이 쓴 《집안의 천사 죽이기》를 떠올렸습니다. 제목만으로도 저를 얼어붙게 한 책이지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수행하려고 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나 시시콜콜 참견하는 집안의 천사, 사람들을 배려하고 주변을 살피며 친절해지라고 요구하는 천사. 그 천사는 크든 작든 대체로 여자가 사는 집이라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 천사의 크기는 다행히 거대하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릴 때 교육에 의해서, 착하고 순하게 자라길 바라는 어른들에 의해 제게 ‘할당’된 천사지요. 자기 몫을 채우려고 존재하는 천사요. 당신 말대로라면 “체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정신이나 소망을 갖기보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소망에 공감하기를 좋아”하는, 아니, 좋아하도록 교육받은 천사 말입니다. 그 천사는 때때로 제 앞에 와 자신이 곧 ‘나’라고 우깁니다.
“나는 그녀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만약 내가 고소당해서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겁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나의 글에서 핵심을 빼앗아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깨달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신이 없으면, 또 인간관계나 도덕과 성(性)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한 권의 소설조차 비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2)
당신은 살아나 기어오르는 천사에게 잉크병을 던지고, 다시 죽이기를 반복하며 글을 썼지요. 천사의 존재가 지니는 “허구적인 특성” 때문에 완전히 죽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 글을 읽으며 때때로 제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싸움,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여전히) 하고 있는 천사와의 싸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버지니아, 당신은 100년 전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성이 온전할 수 있으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은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오만한 온전함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인 상태(자연스러움)를 기꺼워하는 온전함 말이지요. 오랫동안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온전함입니다. 여성을 혼자 두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납하지 않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 늙어가는 일이 흔했으니까요.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 힘은 당신이 말한 자기만의 방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자신으로 오롯할 수 있는 시간, 공간, 여건.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돈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솔직히 꺼내고, 강조해줘서 고맙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부를 가진 남자’의 아내로 사는 일, 그것을 부러워하는 시선을 경멸하게 됐습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 곁에서 2차적 이익을 얻으려는 자의 속물성에 대한 경멸이 아닙니다. 그보다 그런 인생의 비루함과 ‘위험성’ 때문입니다. 스스로 이루지 않은 부와 명예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매력이 사라지는 순간, 시간이 권태라는 옷을 입는 순간 사라지지요. 내 것이 아닌 것,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거예요. 스스로 온전해지려면 누군가에게 기대면 안 되지요. 자기 삶을 스스로 세우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고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하고, 노력하고, 돈을 벌려고 애씁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거예요.
지금은 202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당신의 예언을 떠올려봅니다.
“예언을 해보자면 여성들은 앞으로 더 적은 수의 소설을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다. 나아가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비평, 역사도 쓸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바로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한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여성들이 가질 저 황금시대, 아마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는 셈이다.”
1929년 3월 《포럼》에 실린 글로, 당신이 곧 발표하게 될 《자기만의 방》의 전신인 ‘여성과 소설’ 중 일부입니다. 당신의 예언은 적중했어요. 너무나 많은 훌륭한 여성들이 훌륭한 소설, 시와 비평을 쓰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많지만, 당신의 예언은 맞았어요.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쓴 모든 글은 그가 여성이라서 쓰인 게 아니라 그가 버지니아 울프이기에 쓰인 거라고요. 동의해요. 당신의 뛰어남은 ‘당신의 존재함’,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싸움이다”라고 정의하는 삶의 태도에 기인해요.
등 뒤에 당신이 있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는 큰 용기를 얻습니다. 고마워요.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 2022.03.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