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한국인에게 당신은 그리움이고, 설움이고,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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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4) 김소월! 한국인에게 당신은 그리움이고, 설움이고, 기다림입니다
훗날 민족의 서정시인이라는 월계관을 쓰지만 당대에는 혈연 공동체 안에서조차 내쳐져 건달이나 한량으로 손가락질당하던 존재!
소월, 하고 당신 이름을 가만히 부를 때마다 내 심장은 차갑게 식는 듯합니다.
장석주
당신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떨어뜨리지요.
떨어질 때 느끼는 서늘한 감정, 바이킹을 타고 아래로 내려올 때의 기분, 그런 걸 느끼게 해요.
귀신 같은 사람, 일찍 마음을 보낸 사람.
‘진달래꽃’만 보고서는 당신의 이 귀기鬼氣 어림을 알기 힘들겠죠.
모르는 게 나을까요?
박연준
장석주 | ‘저만치’ 있는 당신
당신은 고독의 반가사유상, 설움의 지극한 경지를 깨달은 부처, 임도 집도 없이 떠도는 유랑극단의 얼굴에 고운 분(粉) 바른 곡예사! 훗날 민족의 서정시인이라는 월계관을 쓰지만 당대에는 혈연 공동체 안에서조차 내쳐져 건달이나 한량으로 손가락질당하던 존재!
소월, 하고 당신 이름을 가만히 부를 때마다 내 심장은 차갑게 식는 듯합니다.
노란 산수유 꽃이 아기처럼 입을 벌리고 봄비를 쪽쪽 빨아먹는 오늘, 당신의 시집을 찾아 읽습니다. 〈왕십리〉 〈진달래꽃〉 〈비단안개〉 〈엄마야 누나야〉 같은 시를 가만히 읊조릴 때 짧은 봄날은 빠르게 저물지요.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라고, 어스름 저녁 애달피 고운 비에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라고, 당신은 썼습니다. 설움이 넘쳤으니 눈물로 ‘외로운 꿈의 베개’를 적시는 일도 많았겠지요.
소월,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당신은 저 먼 북쪽, 한반도의 북단에서 태어났고, 나는 중부에서 태어났어요. 게다가 시대가 엇갈린 채로 태어났으니 애초 우리 만남은 불가능했지요. 무지몽매한 어린 시절에 우연히 당신의 시를 읽으며, 무작정 시의 세계로 발을 디뎠습니다. 당신의 시는 슬펐습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혼으로 설움에 겨워 울부짖는데, 그 사정은 알 수가 없지요.
소월, 당신의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1902~1934). 평안북도에서 공주 김씨 문중의 장손으로 태어났지요. 정주의 오산학교를 다니다 3·1운동의 여파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서울 배재중학에 편입했습니다. 오산중학에서 평생의 은사인 김억 선생의 영향 아래 시를 썼습니다. 스무 살 이전에 당신의 가장 훌륭한 시들이 쏟아진 걸 보면 당신의 문재(文才)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문중의 기대를 한 몸에 품고 배재고보를 거쳐 일본 유학을 떠난 것은 1923년인데, 때마침 일본에서 터진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유학 1년도 채 못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산에서 사노라네 //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 - ‘산유화’
물 흐르듯 자연스런 리듬감이 돋보이는 당신의 ‘산유화’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만치’라는 부사어입니다. 무리에서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피었다 지는 꽃에 당신은 자아를 투사했지요. ‘저만치’는 당신이 살던 시대 안에서 느끼는 고립의 징후이자 외로움과 소외가 발생시킨 거리감을 드러내죠. 어쨌든 ‘저만치’는 무리에서 이탈한 심리적인 거리를 안고 외따로 떨어진 자리에서 삶을 꾸리던 당신의 내밀한 설움과 고독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가리킵니다. 자연스럽게 발화되는 유정한 정한(情恨), 설움의 덩어리가 생겨나는 지점이 바로 ‘저만치’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요.
“들가에 떨어져 나가앉은 묏기슭의 / 넓은 바다의 물가 귀에, /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 ‘나의 집’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집은 존재의 피난처, 실존의 중심입니다. 이 지상에서 집 한 채를 갖는 건 온전한 삶을 잇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지요. 당신은 묏기슭과 넓은 바다에 면한 물가 뒤에 “나의 집을 지으리”라고 다짐을 했건만 끝내 집을 갖지 못했어요. 그랬으니 아침부터 집 앞에 나와 앉아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하마 당신이 오실까 기다리는 일도 무산됐겠지요.
당신의 시를 보면 당신 집도 없고, 임도 없이 쓸쓸하게 떠도는 존재입니다. 당신은 왜 혼자일까요? 당신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는데, 왜 내내 내쳐진 고아인 듯 쓸쓸했을까요? 짐작 가는 단서는 당신이 일제 강점기 동안 심리적 고립과 소외를 겪은 이방인이라는 점입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던 당신은 너무 예민해서 남들이 다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남들이 다 갖는 불행의 항체마저 결핍되어 있었지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초혼(招魂)’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긴 못 견딜 설움을 노래한 시, 죽은 사람은 죽었을지라도 산 사람은 살려고 죽은 이의 혼을 부르고 달래는 시, 애끓는 애도 속에서 생긴 마음의 무늬를 적은 시겠지요. 목이 메도록 부르던 그 이름, 산산이 흩어져서 허공으로 사라진 그 이름,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그 이름은 누구의 것인가요? 분명 사랑했던 사람, 죽음으로 세상에 없는 그이의 이름일 테지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사람에게 하늘과 땅 사이는 얼마나 소름 끼치도록 넓었을까를 상상해봅니다.
소월, 당신은 정치 운동에 뛰어들거나, 세계의 부조리와 폭력에 의롭게 맞선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은 호구지책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시민이었어요. 아, 나쁜 시대에 태어나 저 하나를 건사하기조차 만만치 않았기에 당신은 ‘나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당신은 처가가 있는 고장에서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운영하다가 실패하고 나중엔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댔어요. 서민의 고혈을 빠는 고리대금업이 얼마나 비루한 일인가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 짓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데는 절박함이 있었겠지요.
어쨌든 당신은 망국의 변방을 떠돌던 소시민, 식민지의 잔맹(殘氓), 삶에서 실패를 겪고 무릎을 꿇은 패배자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에겐 부양가족이 있고, 그 사실은 엄중했고, 그 무게는 어깨를 짓누를 만큼 막중했겠지요. 천업(賤業) 비루함을 떠맡아야 할 만큼 깊은 당신의 절망은 깊었겠지요. 그 소규모의 슬픔, 그 소규모의 불행만으로도 당신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어요. 고향 곽산에서 생활고와 염세증에 빠져 생애의 마지막 나날을 술에 취한 채 허송세월을 하며 보낸 건 일종의 삶에 대한 태업(怠業)이었나요. 어느 날 당신은 서른두 살의 새파란 나이에 아편을 삼키고 세상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소월, 오늘도 당신은 천국 어느 모퉁이에 나와 앉아 길손을 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기다리고 있나요?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잊음 이후, 당신 ‘이후’
소월, 당신은 아시겠죠? 시가 쓴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시는 시인에게서 벗어나려고 태어나죠. 아기가 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가 되듯, 완연한 결별. 시는 ‘홀로’ 섭니다.
이미 오래전 당신의 시는 제 소유가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시를 꽤 여러 편씩 소유하고 있지요. 등기만 안 했지, 소유권이 작품을 향유하는 독자에게 넘어오는 일. 문학의 효용이라면 효용일까요. 소월, 당신의 시가 당신의 것만이 아닌 일. 시인으로서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이후’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언가 일어나고, 그다음으로 맞는 시간, 장소, 감정을 생각해요. 당신의 짧은 시, ‘옛 낯’을 읽어볼까요.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생각 이후 졸음이, 그리움 이후 잊음이, ‘이후’에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묵직하게 휘몰아쳐, 결국 ‘설움 이후’로 데려가지요. 당신의 시들은 대개 그렇습니다. 수틀에 놓인 흐린 꽃밭 같아요.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꽃이 있었지, 설핏설핏 생각이 나다 말다 하지요. 흑백의 눈부심 같아서 돌아서면 편히 잊게 되지만, 잊음 이후에 별안간 살아납니다.
잊음 이후. 다 잊었나 싶을 때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그건 그리움의 부활입니다. 죽은 그리움이 자꾸 살아나니 갈대처럼 수런대는 감정의 파도 같은 거죠. 생동하는 그리움, 이후. 그리움, 이후. 가령 이런 감정이죠.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 ‘가는 길’ 부분
좋아하는 한 시인(김혜순)은 ‘잔상’이 시를 쓰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은 후, 눈앞에 어른거리는 감각, 이미지. ‘이후’지요. 그것은 상상을 불러옵니다. 환영이나 슬픔, 혼란을 불러오지요. 시인은 일어난 일 ‘이후’에 책임지고 싶어 하는 자일까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가 지나간 자리, 나뭇잎이 떨어진 다음, 누군가와의 이별 너머, 죽은 사람이 사라진 공간 ‘이후’를 상상하며 파헤칩니다. 손톱이 빠질 때까지. 힘든 줄도, 고통스러운 줄도 모르고 하지요.
“눈들이 비단안개 둘리울 때, /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려라. //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 그때는 홀목숨은 못 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마귀로 /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 눈들이 비단안개에 들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려라. //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 ‘비단안개’ 전문
각 연의 첫 3음절이 저를 미치게 합니다.
“눈들이”, 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것. 죽은 이들만 모여 사는 마을, 늦저녁에 울리는 종소리 같아요. 청아한데 어둑한 소리. 그곳에서 소리 내어 발음해보세요. ‘눈드리. 눈드리, 눈드리, 눈드리.’
총 네 번 반복되는 구절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이 시는 이 소리가 모든 것을 끌고 갑니다. 그게 다예요. 나뭇가지에 당치마귀(치마끈) 걸어 젊은 계집이 목을 맬 때, 당신이 누군가를 잊지 못해 눈이 내릴 때.
그 풍경과 감정을 끌고 갑니다.
당신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떨어뜨리지요. 떨어질 때 느끼는 서늘한 감정, 바이킹을 타고 아래로 내려올 때의 기분, 그런 걸 느끼게 해요. 귀신 같은 사람, 일찍 마음을 보낸 사람. ‘진달래꽃’만 보고서는 당신의 이 귀기 어림을 알기 힘들겠죠. 모르는 게 나을까요?
시 공부를 하던 때입니다. 사는 게 컴컴한 동굴 지나는 것처럼 힘들다고, 늘 낯빛이 어둡던 여자애 둘이 있었지요. 하나는 제 후배 C고, 다른 하나는 저예요. 시와 소설을 쓰고 합평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써낸 글은 당신 시처럼, 슬픔으로 가득했답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우리를 둘러싼 슬픔이 징그럽기도 해, 우리는 ‘소월클럽’ 정식 회원이라며 농을 치기도 했어요. 소월클럽이 어떤 클럽이냐고요? “한이 많은 글쟁이” 모임 같은 거예요. (부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길!) 자조적인 농담을 일삼으며 글을 쓰던 때였지요. 지금 그 친구는 글을 쓰고 있지 않지만,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어요. 어쩌면 저희는 ‘소월클럽’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둘 다 겉으로 보기엔 거의, 아니 겨우 괜찮아 보이거든요.
아시지요, 소월. 태어나면서부터 당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 있어요. 계속 태어나요.
수시로, 당신의 ‘추회追悔’란 시의 첫 행을 붙잡고 걸어요. 풀잎을 손에 쥔 듯, 당신의 시 한 줄을 쥐고 걸어요.
“나쁜 일까지도 생의 노력.”
저는 끝내, 소월클럽에 속해 있을 거예요.
충분히 좋거든요. 나쁜 일까지도 생의 노력이라면, 소월. 그런 생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지금 한국 시인들, 특히 젊은 시인들, 당신의 빛나는 후예들은요. 아름다운 시를 펄펄 써내고 있습니다. 시가 저문다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열렬히 좋아서, 시를 씁니다. 시가 팔리지 않는 가치라는 건 상관하지 않아요. 당신의 후예들은 누구 하나, 시로 무언가를 이룰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난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시를 쓸 뿐이에요.
그러니 그곳에서, 당신이 우리를 돌보세요.
그게 일찍 간, 당신의 일이랍니다.
그러면 이쪽에서도 당신을 생각할게요.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어.”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 2022.03.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