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 드라마로 왜곡된 장희빈, 사실은 악녀가 아니다? ② < Series < Culture < 기사본문 - 월드투데이 (iworldtoday.com)
[역사 속 인물] 드라마로 왜곡된 장희빈, 사실은 악녀가 아니다? ②
당시 조선의 시대 상황과 장희빈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
[월드투데이 유효미 기자] 장희빈이 살았던 조선은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붕당정치가 과열된 상태였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중인과 상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신분 질서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혼돈의 시대 그 자체였다.
장희빈과 숙종의 만남
숙종과 장희빈의 첫 만남은 꽤나 강렬했다. 숙종은 장희빈의 빼어난 미모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장희빈은 궁에 입궁하자마자 숙종의 큰 환심을 샀고, 대왕대비 장렬왕후(인조의 계비)까지 등에 업어은 채 더욱 더 굳은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또 남인 세력이었던 장렬왕후를 따라 장희빈도 자연스레 남인 세력에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이후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남인이 몰락해버리자, 장희빈은 숙종 6년(1680)에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때가 바로 경신환국이 일어난 시점이다. 경신환국을 기점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으니, 남인 세력이었던 장희빈은 이미 궁에서 쫓겨날 운명이었다.
남인 세력이었던 장희빈과 그 반대편에 섰던 인현왕후
장희빈과 이별하게 된 숙종은 이내 인현왕후와 혼인을 하였다. 인현왕후는 장희빈과 달리 뼛속까지 서인 세력이었다. 사실 이 혼인은 숙종의 외가인 서인 한당과 조선 유림의 최대 세력인 서인 산당이 손잡아 성사시킨 국혼이었다. 숙종 입장에서는 강제로 혼인을 당한 셈이다. 장희빈을 사무치게 그리워 한 숙종은 모후인 명성왕후의 사망으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자 다시 장희빈을 궁에 입궐시킨다.
끝내 장희빈이 다시 궁에 입궐히긴 했지만 서인의 반대를 피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숙종 15년(168) 1월에 장희빈의 아들이 원자로 채택됐다. 이는 서인 세력에 대한 강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남인은 이를 기회로 삼아 서인인 송시열을 탄핵하고 서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이 사건이 바로 남인이 다시 재집권한 기사환국(숙종 15년)이다.
결국 기사환국은 숙종과 장희빈, 남인의 합작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숙종이 기사환국을 일으킨 목적은 오직 장희빈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당시 조정은 붕당 정치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왕이 어떤 이유에서든 한 당을 내쫓고 다른 당을 택하면 조정은 그럭저럭 원만하게 돌아갔다.
정치적 희생양이었던 장희빈
어쩌면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장희빈을 이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인 측근이었던 인현왕후는 당연히 폐위되었다. 명분은 인현왕후의 과한 투기였지만, 실은 인현왕후가 서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장희빈은 다시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마음이 식어버린 탓이다. 숙종은 후궁 무수리 최씨에게 눈이 팔렸고, 무수리 최 씨가 장희빈의 자리를 위협하였다. 더구나 서인 세력인 무수리 최씨는 숙종 사이에서 왕자까지 낳고야 말았고, 서인은 이를 이용해 인현왕후를 다시 복권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서인들과 결탁한 무수리 최씨를 총애한 숙종은 다시 남인에서 서인으로 환국을 시도했다. 갑술환국(숙종 20년)이 일어난 것이다. 장희빈은 왕비 자리에서 내쳐졌다. 궁에서 쫓겨나 취선당으로 밀려난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죽으면 중전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살아갔다.
숙종에게 배신 당한 장희빈의 쓸쓸한 최후
숙종 27년 8월, 인현왕후는 결국 생을 마감했고. 숙종은 장희빈에게 자결을 요구했다. 장희빈이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최씨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이를 반대했지만 숙종은 "희빈을 살려둔다면 후일 뜻을 얻어 안팎으로 자신의 당파를 심은 뒤에 국가의 근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장희빈은 파란만장했던 삶을 스스로 쓸쓸히 마감하게 된다. 지금까지 장희빈이 그려온 삶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와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삶에서 악녀다운 면모는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드라마는 장희빈이라는 인물을 악독하게 그려냈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다음 편에서 차차 찾아 나갈 계획이다.
출처 WORLDTODAY 2022.02.19
/ 2022.02.26 옮겨 적음
출처 WORLDTODAY 2022.02.2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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