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하늘말나리' 초록그늘에 숨다 (daum.net)
[2015 천마산 야생화 기행기] <2> 여름편..녹음과 대비되는 색의 향연이 넘치다
[머니투데이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겸임부장] [2015 천마산 야생화 기행기] <2> 여름편… 녹음과 대비되는 색의 향연이 넘치다
세월의 어느 물가에 나란히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흐르는 물에 머리 감아 바람에 말리고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나이가 들었으면 싶습니다
살다가보면 어느 날 큰물 지는 날
서로 손을 잡고 견디다가도
목숨의 이파리 끝까지 물은 차올라
물줄기에 쓸려가는 날 있겠지요
삼천 굽이 물줄기 두 발짝도 못 가서 손을 잃고
영영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태어나는 세상의 남은 생애를
세월의 어느 물가에서 따로따로 그리워하며 살겠지요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목이 길어진 나리꽃 한 송이씩 되어
바위 틈에서 잡풀 속에서고 살아가겠지요
- 도종환 '나리꽃' 전문
지난 4월 봄 야생화를 보자고 다녀온 천마산. "여름부터는 '꽃궁기'(꽃이 없다는 의미의 조어)로 접어들지만 그래도 멋진 녀석들이 있지요. 여름에도 오세요." 한국관광공사가 무더위를 피해 야생화 생태 여행지로 추천하는 수도권의 대표 산 중 하나에 천마산이 속했다는 뉴스를 본 순간, 봄 천마산에서 만난 야생화 얼굴들이 어른거렸다. 물론 "또 오라는" 천마산행 도우미 조영학 번역가(페이스북 야생화를사랑하는사람들 공동운영자)의 말씀도 중요한 힘이 됐다.
천마산을 7월 초 다시 찾았다. '저질 체력'의 산행자는 엉덩이를 한껏 빼고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야 드문드문 꽃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몸을 가장 낮게 낮춰야 볼 수 있던 얼굴들은 아예 땅속으로 숨었는지 사라지고 없다. 잎이 무성해지고 진해지는 계절을 따라 꽃들도 산행을 하나 보다. 여름 꽃은 봄꽃보다 산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다. 묵현리 들머리에서 시작한 여름 꽃 기행. 시작 전 조 번역가가 동네 텃밭 뒤, 낮은 둔턱으로 안내한다. 솔나물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작은 무덤이 있고 주변에 노란 물결이 흐른다. 솔나물과 원추리와 인사로 시작하는 셈. 천마산 여름 꽃의 대표 선수라 할 수 있는 하늘말나리 작은 군락도 만났다. 주황과 초록이 찬란하게 빛난다.
천마산 초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성질 급한 쑥부쟁이 두 송이가 벌써 얼굴을 내밀었다. 나비 한마리가 바람에도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는 게 졸고 있는 듯하다.
650미터 뾰족봉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여름, 모든 산에 있다는 '큰까치수염'이 산행 내내 길동무가 돼준다. 무성한 잎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 진녹색과 대비되는 하얀 수염은 '에헴'을 외치며 살짝 살짝 원하는 방향으로 쓰다듬고 있는 양반을 보는 듯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저 꽃이 뭐야? 어쩜 저렇게 진하고 고와. 한그루 캐다가 화분에 심어놓으면 좋겠어."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인 셋이 뒤쪽에서 하는 얘기를 들으니 무엇을 가리키는지 보지 않아도 알 듯하다. 녹음이 우거진 산속에 있는 하늘말나리는 그야말로 '보색의 향연'이다. 나리는 여름 꽃의 대표 선수. 천마산에는 털중나리와 하늘말나리가 많다고 한다. 털중나리는 안타깝게 져가는 한 모습만 간신히 만났다. 하늘말나리는 아직 한창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말아 올라간 꽃잎이 안타깝다. 극심한 가뭄에 꽃들은 타들어가고 있다.
"하늘말나리예요."
"어머 꽃 이름을 잘 아신다. 야, 우리는 그렇게 와도 꽃 이름 알아볼 생각 안했잖니."
"예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하겠죠. 이 녀석들은 돌양지꽃이구요. 조 녀석들은 큰까치수염이예요."
하늘말나리. - 나리는 여름꽃의 대표 주자. 천마산에는 털중나리와 하늘말나리가 많다. 가뭄이 심해 꽃들이 타들어가고 있다.
보광사 방향의 하산길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일행이 묻는다. "어, 저게 뭐지?" 멀리 보이는 흰 그림자. 우리나라 산 각처에서 자란다는 산꿩의다리다. 줄기가 꿩다리처럼 가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늘 속에서 꿋꿋하게 서 있다.
점심 후 깔딱고개 삼거리에서 가곡리 방향 천마산 임도를 따라 가는 길에는 산딸기가 익고 있다. 앞이 트인 곳에 서니 진한 꽃향기에 어지럽다. 7월이면 핀다는 칡꽃도 막 피기 시작했다.
사람이 심어놓은 코스모스 길과 비교할 수 없는 개망초길을 걷다가 우리나라 자생식물 등골나물과 벌등골나물을 처음 만났다. 동네 화단이나 산은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꼽히는 서양등골나물이 장악했다. 등골나물은 그나마 서양등골나물보다 먼저 펴 서식지를 애써 지키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을 다 내려왔다 싶은데도 인터넷이나 도감 사진으로만 보던 자생식물을 여럿 만났다. 노루오줌, 짚신나물, 좁쌀풀, 쥐손이풀, 이질풀, 파리풀, 끈끈이대나물, 석잠풀, 선괴불주머니, 꼬리조팝나무, 으아리. 여름을 누가 꽃궁기라고 하나. 여름 산 천마산에는 가뭄과 싸우는 씩씩한 야생화들이 수십 종 살고 있다.
지느러미엉겅퀴-엉겅퀴-석잠풀 물레나물-하늘타리-기린초
<촬영정보>
*도움말 :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운영자 조영학 외 회원님들
*촬영도구 : 갤럭시노트3/갤럭시S6
*촬영일시 : 2015년 7월 4일
*촬영지 : 천마산 묵현리 들머리→뾰족봉→깔딱고개 삼거리→임도→ 보광사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겸임부장 머니투데이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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