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꽃기행기 2016 봄 축령산~화야산] '참숯처럼 뜨거워진' 얼레지의 연애.. '솜털 보송' 노루귀는 부끄럽고 (2022.02.17)

푸레택 2022. 2. 17. 11:54

사람의 몸을 가장 낮게 낮춰야 만날 수 있는 작은 얼굴들 (daum.net)

 

사람의 몸을 가장 낮게 낮춰야 만날 수 있는 작은 얼굴들

[머니투데이 신혜선 부장] [[2015 천마산 봄꽃 기행기]'꽃궁기' 전 봄 야생화 만나보실래요] '...모든 눈물은 소용돌이를 거쳐 나온다.너무 추운 철에 핀 슬픔다 말면 뚝, 하고 떨어지는가장 먼저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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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꽃의 근원은 이끼 낀 바위와 오래 묵은 낙엽..황금 복수초·들바람꽃을 품은 힘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편집자주]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고개 숙인채 빛나는, 몸을 한껏 낮춰야 볼 수 있는 모습들. 올해는 어떤 얼굴로 만나게 될까. 고급 카메라가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렌즈보다 눈에, 눈보다 마음에 담아야 좋을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 '얼레지' 전문, 김선우

지난 3월 20일 경기도 남양주시 가평군에 있는 축령산과 화야산. 수도권 인근 산 중에서 ‘얼레지’와 ‘들바람꽃’이 군락을 이뤄 ‘봄꽃 기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빠트리지 않고 찾는 명소다. ‘바람난 여인’ 분홍색 얼레지를 만날 생각에 맘은 이미 들떴다.


■ 황금잔 복수초의 생애를 보다

축령산에 먼저 들렸다. 가장 먼저 반긴 건 역시 ‘복수초’다. 고목이나 바위 아래 혹은 깊은 낙엽 속에 무리 지거나 홀로 핀 복수초가 지천이다. 활짝 피기 전 오목한 모양을 빗대 ‘황금잔’으로 부르는 복수초는 한해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는 꽃말을 갖고 있다. 산에서 나는 야생화로 가장 먼저 피느라 미처 녹지 않은 눈밭에서도 만날 수 있다. 1년 전 비슷한 시기엔 인근 천마산에 갔다. 천마산 복수초는 거의 다 피어 잔 모양을 찾기 어려웠다. 올해는 한 주 정도 서두르길 잘했다. 기대한 대로 복수초의 봉오리부터 만개한 모습까지 그들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작은 봉오리 모습의 복수초는 짙은 고동색으로 쌓여있다. 봉우리가 서서히 벌어지면서 진노랑, 눈부신 황금빛이 그 틈으로 새어나온다.

피기 전 복수초 봉오리/갤럭시S6
  

만개한 복수초 얼굴. 이끼긴 바위, 고목, 낙엽사이에서 빛난다/갤럭시S6


■ 뒤가 붉은 흰 꽃 ‘들바람꽃’… 만개하면 다시 하얗게


얼레지를 만나러 가기 전, 화야산 자락 뾰루봉 초입부에 잠시 들렸다. 천마산에서 군락을 이룬 ‘만주바람꽃’은 축령산이나 화야산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다. 대신 이곳의 주인은 ‘들바람꽃’이다. 바위와 낙엽 틈 곳곳에서 하얗게 빛나는 들바람꽃을 만났다. 들바람꽃은 다른 바람꽃과는 잎사귀도 확연히 다르지만, 꽃 뒷면이 붉어 다른 바람꽃과 구분이 된다. 꽃이 활짝 피고 나면 이 뒷면 붉은 기운이 없어지고 하얗게 변한다.

들바람꽃. 꽃뒷면이 붉다. 꽃이 만개하면 다시 희게 바뀐다./갤럭시S6
  

들바람꽃/갤럭시S6


■ 야생화 맞아? 화려함을 한껏 뽐내는 '봄 처녀' 얼레지


드디어 얼레지를 만나러 간다. 차로 십여 분 이동해 화야산에 도착하니 이미 삼각대를 세우고 엎드려 촬영에 바쁜 이들이 꽃만큼 많다. 줄을 서서 꽃을 찍는 모습이라니. 진분홍 꽃잎의 색과 자주색 무늬가 있는 잎의 색이 대조적인 얼레지는 화려함 그 자체다. 긴 꽃잎이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180도 형태로 뒤집히는 게 신기하다. ‘대궁속의 격정’으로 ‘뜨거워진다’고 얼레지를 노래한 김선우 시인의 맘이 헤아려졌다.

화야산 얼레지 군락. 야생화가 아닌 듯, 색도 꽃술 주변의 문양도, 자태도 화려하다. /갤럭시S6
  

얼레지/갤럭시S6
  

얼레지/갤럭시S6


■ 똑 떨어지는 색! 노루귀…백미는 보송보송 솜털


언제봐도 청초하다. 얼레지와 더불어 하얀, 분홍, 보라(청)색으로 빛나는 ‘노루귀’가 맑은 소녀의 얼굴로 반긴다. 꽃 전문가들은 노루귀의 백미를 줄기를 덮은 ‘솜털’로 꼽는다. 꽃받침이 노루 귀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솜털까지 덮인 ‘뒤태’를 보니 진짜 고운 노루털이 저럴까 싶다. 아기의 어린 볼에 난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느낌을 주니 살짝이라도 만져 보지 않을 수 없다.
  

낙엽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내민 흰노루귀/갤럭시S6
  

분홍노루귀/갤럭시S6
  

빛에 따라 사진으로 담은 청노루귀의 꽃잎은 진한 보라부터 연한 남보라까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갤럭시S6


■ 난초인가 하지만 백합과… 중의무릇


잎만 보면 난초인가 싶다. 하지만 찾아보니 백합과다. 축령산에서 작은 노란 꽃과 긴, 그리고 말리는 잎이 멋진 중의무릇도 만났다. 워낙 작아 찾기 힘든데 축령산과 화야산 낙엽더미 곳곳에 숨어있어 발길을 조심해야 했다. 부엽질이 많은 그늘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보려면 해가 나오는 정오 이후가 좋다. 이른 시간에 찾아서인지 입을 다문 녀석들만 만났다. 오후, 화야산에서는 활짝 핀 중의 무릇이 곳곳에서 반갑게 인사한다.

축령산과 화야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중의무릇. 젤 긴 잎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면 15~20cm이지만 꽃대 기준으로는 5cm 키작은 야생화다. /갤럭시S6


■ 꿩의바람꽃부터 강원도에서나 볼 수 있는 선괭이눈까지


각처 산지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꽃 기행 초보자에게는 ‘꿩의바람꽃’도 귀하다. 이번 기행은 조금 일렀나, 활짝 핀 얼굴을 만나지 못했다.

화야산과 축령산 일대에는 '들바람꽃'이 많은 대신 '꿩의바람꽃'이 많지 않았다. 간신히 꿩의바람꽃 몇 녀석을 만났으나 시간이 일러서인지 만개한 고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꿩의바람꽃을 보려면 인근 천마산을 찾으면 좋다. 천마산에는 만주바람꽃도 지천이다./갤럭시S6


오히려 축령산에서 뜻밖에 얼굴을 만났다. 선괭이눈. 금괭이눈이나 애기괭이눈은 경기도 지역 산 일대에 분포하나 선괭이눈은 북부(강원도) 지방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의외다. 쓰러진 고목에 기댄 선괭이눈 한 가족이 황금색 ‘고양이 눈’으로 빛난다.

■ 정원수 돌단풍? 진짜 돌단풍은 바위에서 자란다고 전해라

잎이 단풍을 닮아서 붙여진 돌단풍. 진짜 돌단풍을 만났다. 커다란 바위, 이끼 위에 이제 막 자라는 어린 모습이다. 돌(흙)의 성분에 따라 봉우리의 색깔이 희거나 붉은 형태로 다른데, 만개한 돌단풍의 꽃은 흰 별꽃 같다.

■ 각시현호색 vs 점현호색

점현호색은 처음 발견지가 인근 천마산이어서 처음엔 '천마산점현호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특징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게 좋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최근에는 점현호색으로 불린다. 점현호색은 잎 군데 군데 물 빠진 듯 점이 번져있고, 현호색은 잎에 점이 없다. 화야산에서 처음 만난 각시현호색은 꽃이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각시현호색 vs 점현호색/갤럭시S6


도움말 : 페이스북 '야생화를사랑하는사람들'

글=신혜선 문화부장 머니투데이 201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