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행기- 2016 봄 소백산]비로봉을 향하다 진홍빛 아래로 노란 수신호가 보이거든 (daum.net)
<4> 가장 높은 곳의 가장 낮은 땅에..'시들 때 시들줄' 아는 꽃으로
띠풀이 단정한 묏등에 제비꽃 한 송이
누군가 꽂아준 머리꽃핀이어요
죽어서도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다니
살았을 때 어지간히나 머리핀을 좋아했나봐요
제비꽃 머리핀이 어울릴 만한
이생이 사람 하나 내내 생각하며 돌아오는데
신갈나무 연두 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달래꽃이
이생의 그분처럼 시들고 있어요
- 공광규, '제비꽃 머리핀' 전문(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묏등은 아니었으나 아직은 황량한 그곳 여기저기서 노란 수신호가 바람따라 흔들린다. 차갑고 맑은 공기만큼 때 타지 않은 얼굴. 소백산 1400미터, 가장 높은 곳에 피는 꽃은 비로봉 아래 군락을 이룬 주목 나무 꽃이다. 그 높은 곳의 가장 낮은 땅에 피는 꽃은 노랑제비꽃이다. 도심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노랑제비꽃은 맑음의 상징이자 소백의 봄 얼굴이라 할만하다. 곧 소백산 전체를 붉게 물들 철쭉에 가려져 그 빛도 사라지겠지만, 서운해 할 일은 아니다.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안도현, '제비꽃 편지')처럼 때가 되면 가고 다시 오는 게 야생화다. 그럼에도 두 계절을 보내는 제비꽃의 생명력이라면 아직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한 붉은색에 감탄만 하지 말고 철쭉 무리 밑동을 살펴 안부를 물어주면 좋을 터.
소백산은 제비꽃의 나라다. 열 가지 이상의 제비꽃이 산다. 그중 샛노랗게 빛나는 노랑제비꽃이 단연 으뜸이다. 태백제비꽃과 남산제비꽃도 연화봉 오르는 길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국내 서식하는 제비꽃은 100종 가까이 돼 몇 가지를 빼고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저 제비꽃 안녕!
민둥뫼제비꽃 - 둥근털제비꽃 - 고깔제비꽃 - 남산제비꽃 - 노랑제비꽃(사진 왼쪽부터) /사진=신혜선. 갤럭시S6
소백산의 또 다른 명물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데미풀이다. 미나리아재비과인 모데미풀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대표적인 토종 야생화다. 다년생으로 높은 산 습기 찬 곳에 산다. 죽령 옛길부터 연화봉-비로봉을 오르는 소백산 일대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산지대, 습한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두운 배경에서 더 환하게 빛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록 망토를 입을 요정이 삼삼오오 줄을 맞춰 선 듯 우리나라 여러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현호색도 소백산 연화봉 가는 길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청색 꽃잎 목쯤, 삐죽삐죽 가시 같은 게 나 있다면 갈퀴현호색이다.
박새. 으악새가 새가 아니듯 박새도 새가 아니다. 흰색에 가까운 연한 노란빛이 도는 백합목과 꽃이다. 깊은 산 습지에 무리 지어 사는 박새도 소백산 곳곳에 있다. 천문대 바로 아래부터 비로봉-연화봉을 거쳐 단양으로 내려가는 천동계곡 일대에 빼곡하다. 4월 소백산을 갔을 때는 이제 순이 올라온 상태라 아쉽게도 꽃대조차 구경 못 했다. 7~8월에 한창 피는 여름꽃이라 지금쯤이면 진한 초록 바탕 위로 기다란 꽃대가 올라와 있을 듯하다.
흔하고 하찮아 보이는 꽃에도 이름이 있다. 우리나라 어지간한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들꽃, 개별꽃. 소백산을 오르는 길, 바위틈, 고목 아래지만 그늘이 아닌 햇볕 아래라면 눈부시게 빛난다. 개별꽃(사진 오른쪽)은 꽃잎이 다섯 장, 큰개별꽃은 꽃잎이 많으면 10장까지도 난다. 소백산은 봄부터 겨울 상고대까지 4계절 꽃이 넘치는 곳이다. 노랑제비꽃과 모데미풀 등 소백산의 대표 주자 외에도 여러 봄꽃이 반겨줄 것이다. 애기괭이밥, 처녀치마, 바람꽃, 산괴불주머니, 개감수, 자주독두리풀, 솜나물, 연복초 등 봄꽃이 수십 종 어울려 산다.
소백산에서 만난 애기괭이눈, 흰괭이눈, 선괭이눈 등 괭이눈 삼총사.
삿갓나물은 나물이지만 먹으면 탈난다. 잎이 바람개비처럼 생겨 알아보기 쉽다. 지금쯤 꽃대가 올라왔을 듯하다.
세잎양지꽃과 양지꽃도 만나고. 제2연화봉에서 천문대를 향하는 길, 노랑제비꽃과 어울려 핀 양지꽃이 많다. 길가는 양지꽃이 줄을 지어 등산객을 반겨준다.
서울 도심에서 보는 대부분 노란 민들레는 서양 민들레다. 토종 민들레는 꽃받침이 꽃 쪽으로 붙어있고, 서양 민들레는 꽃받침이 발라당 뒤집혀있다. 흰민들레는 토종으로 서울 도심에선 볼 수 없다. 죽령 옛길 초입부 사람이 사는 동네에, 단양으로 내려서는 길옆에서 흰민들레가 도시인을 반긴다.
글=신혜선 문화부장 머니투데이 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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