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조용준의 여행만리] 춘삼월 수묵화, 유려히 흐르는 아흔아홉굽이 묵선.. ‘양양 구룡령 드라이브여정’ 새하얀 무릉도원, 마지막 설국을 보내며

푸레택 2022. 1. 31. 19:17

[조용준의 여행만리]춘삼월 수묵화..유려히 흐르는 아흔아홉굽이 묵선 (daum.net)

 

[조용준의 여행만리]춘삼월 수묵화..유려히 흐르는 아흔아홉굽이 묵선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남쪽에서 봄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 매화, 산수유에 이어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영동에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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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험준한 길목인 구룡령은 한적하다. 휴가철 빼고는 평소에 차 한대 구경하기 쉽지않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에 맞는 드라이브여정으로는 이만한곳이 없다. 폭설이 내린 지난 주말 첩첩산중 구룡령가는길은 이모습 그대로다.
 

양양에서 구룡령쪽으로 바라본 풍경
 

폭설에 덮인 구룡령옛길
 

눈덮인 설악해변
 

[조용준의 여행만리] 춘삼월 수묵화, 유려히 흐르는 아흔아홉굽이 묵선

ㅣ‘양양 구룡령 드라이브여정’ 새하얀 무릉도원, 마지막 설국을 보내며

남쪽에서 봄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 매화, 산수유에 이어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영동에는 대설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산간 지방은 최고 15㎝ 이상 내린다고 예보됐습니다. 올겨울 마지막 눈 소식이겠지요. 지도를 펼쳐 살펴봤습니다.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야 하고 드라이브의 즐거움도 있어야겠지요. 눈을 보러 가는 길이니 눈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고요. 짐을 꾸려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홍천과 양양을 잇는 56번국도 구룡령(1013m)입니다. 강원 영서와 영동을 잇는 고개로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이 꼽히는데 구룡령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험준한 길목입니다. 가파르고 험한 길은 용이 구불구불 기어오르는 모습과 같다 해서 구룡(九龍)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습니다. 코로나19 걱정 없이 차를 타고 마음껏 춘삼월의 겨울을 보고 올 수 있습니다. 첩첩산중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 지그재그 커브와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다 보면 설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 길을 빠져나오면 양양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구룡령은 강원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 경계의 고개다. 오대산과 설악산을 연결하는 큰 고개이자 백두대간의 능선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차량 통행량이 줄어든 구룡령은 한적하다. 그 덕분에 유유자적 드라이브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꼭 설국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봄이나 가을날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길은 굽이굽이 산허리를 휘감아 돌지만, 험하다기보다는 유순하다.

구룡령을 넘는 길은 서울양양고속도로 내촌IC를 나와 내촌천의 물길을 따라가다가 56번국도로 올라서는 게 가장 쉽다. 미리 인제IC로 나와 상남면 소재지를 지나 내린천을 끼고 달리다가 원당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6번국도로 구룡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길을 택하면 지방도로 옆의 내린천 물길을 따라 살둔계곡 등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후자의 길을 택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달렸다. 최근 내린 폭설로 도로변에는 아직 눈이 가득 쌓여 있다.

삼봉자연휴양림과
오지마을로 잘 알려진 살둔과 명개리를 지났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운전은 서행 모드가 됐다. 눈 덮인 고개가 온통 운무에 휩싸였다. 구룡령 고갯길을 차고 오르는 맛에는 다른 고갯길에서 느낄 수 없는 이런 짜릿한 기분이 있다. 길을 따라 하얀 겨울 속으로 들어섰다. 산을 하나 돌고 나면 다시 나타나는 산의 풍경은 설국으로 드는 관문처럼 첩첩산중이다.

도로에 별도의 전망대나 차를 세울 공간이 없어 주행하면서 풍경을 즐겨야만 하는 게 조금은 아쉽다. 구룡령 정상엔 백두대간 방문자센터가 있다. 정상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백두대간 구룡령이란 입석이 우뚝하다. 주변으로 눈을 덮고 있는 나무들이 빽빽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경도 한정돼 있지만 잠시라도 봄날의 겨울 느낌을 받기엔 충분했다.양양 방향으로 내려서자 굽이굽이 고갯길에 구름이 자욱했다. 눈보라는 연신 대간마루를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굳어버린 눈을 나무들은 힘없이 이고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흑백의 수묵화 한 폭을 그려놓은 듯했다.

구룡령 정상 부근에는 구룡령옛길이 있다. 홍천 쪽 명개리에서 양양의 갈천리로 이어져 있지만, 명개리 쪽은 숲으로 뒤덮여 있어 길을 찾을 수 없다. 옛길을 가려면 정상에서 갈천리 쪽으로 내려가는 게 편하다. 정상 근처에서 나무계단으로 정비된 백두대간길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잠시 옛길을 걸어보려 했지만 최근 내린 폭설로 통행이 금지되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옛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눈발이 거세졌다. 고갯길을 왔다 갔다 제설차량들이 열일을 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양양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사람들의 손이 덜 닿은 명소가 있다. 바로 갈천리의 갈천약수다. 쇳내 나는 철분이 섞인 약수로는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찻길 옆의 다른 약수와는 달리 산길을 800m쯤 걸어가야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손을 덜 타 옛 물맛과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갈천리의 명소로는 목조로 지어진 현서초등학교 갈천분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폐교됐지만 아담하고 소박한 산골 분교의 풍경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56번국도가 지나는 길에는 깊은 계곡이 많다. 미천골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때 이 계곡에 큰 절이 있었는데, 스님이 얼마나 많았는지 공양을 준비하려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계곡을 덮었다고 해서 쌀 미(米) 자를 써서 미천골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곳이다. 손을 타지 않은 원시림과 맑은 물을 따라 7㎞에 달하는 미천골계곡에는 폭포와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했다가 고려 말에 폐사됐다는 미천골 초입의 선림원 터에는 석등, 3층석탑, 홍각선사탑비, 부도 등의 보물급 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물 맑고 아름답기로 손꼽는 어성전계곡이나 명개리계곡, 공수전계곡, 법수치계곡 등이 모두 56번국도를 따라 이어진다. 미천골을 지나 해담마을, 송천떡마을을 지나면 이내 양양IC다. 56번국도는 양양IC를 앞두고 끝난다. 지척에 동해바다가 있다. 내친김에 겨울 바다로 차를 몰았다. 잘 알려진 낙산사와 낙산해변이 코앞이다. 눈 내리는 바다는 차분하다.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백사장은 발자국 하나 없이 백설기처럼 폭신하다.

◇ 여행 메모

△ 가는 길=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인제 내촌IC를 나와 내촌천의 물길을 따라 56번국도 구룡령, 양양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쉽다.

△ 먹거리= 일대에 먹을거리는 이렇다 할 곳이 없다. 구룡령을 내려와 양양 쪽으로 가다 보면 해담마을에 해담막국수(사진)가 있다. 순메밀 함량이 높아 면발이 툭툭 끊어지는데, 감칠맛과 구수한 메밀 향이 좋다. 양양IC인근에 있는 범부막국수도 이름났다.

홍천·양양=글·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아시아경제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