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이름] 파리지옥풀, 쇠뜨기, 달맞이꽃, 부처손, 괭이눈

푸레택 2022. 1. 27. 21:11

[풀꽃이름] 파리지옥풀 / 임소영

인터넷에서 별 걸 다 파는데 그 중엔 벌레잡이 식물도 있다. 애완동물 기르기에서 뱀이나 이구아나처럼 화초 가꾸기의 특별목록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잠잘 때 곁에다 벌레잡이제비꽃을 놓아두어 이나 빈대를 피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이렇게 해로운 벌레도 잡고 신기함도 있으니, 동영상도 나오고 교육용 전시도 가끔 한다. 주로 다루는 품종은 파리지옥풀을 비롯하여 끈끈이주걱, 벌레잡이통풀 등이다. 식충식물은 냄새·색·꿀 따위로 벌레를 끌어들여 잡아먹는데, 한 동호회는 아예 '벌레잡이 식물원'을 만들고 나섰다.

파리지옥풀은 원산지는 미국이고 영어이름은 '파리 덫'(fly-trap)이거나 '파리(날벌레) 잡이'(fly-catcher) 정도인데, 수입되는 과정에서 '파리지옥풀'로 이름 붙인 듯하다. 이 풀은 변형되어 있는 잎에 감각모가 있어서 벌레가 몇 초 안에 두 번째로 닿으면 순식간에 닫아 잡고, 소화액을 내 벌레를 분해·흡수한다. 두 번째 닿을 때 잡는 까닭은 바람에 날려 온 무생물한테 반응하여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나. 잡는 데 그치지 않고 지옥으로 보내 버리는 풀. 나쁜 것은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믿음이 풀이름에도 배어 있다. / 글=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한겨레] 

[풀꽃이름] 쇠뜨기 / 임소영


어렸을 적 시골 들판에 지천으로 깔린 것에 '쇠뜨기'라는 풀이 있었다. 뿌리가 너무 깊어 계속 뽑다 보니 새벽닭이 울더라고 농담을 하는 이도, 소꿉놀이 할 때 사금파리에 모래로 밥하고 쇠뜨기를 반찬 삼았다는 이도 있다.'뱀밥'이라고도 한다. 특히 햇빛이 잘 드는 풀밭이나 둑에서 잘 자라는데, 그런 곳에서 소가 주로 뜯어먹기에 '쇠뜨기'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과식은 금물로, 아무리 쇠뜨기라지만 소도 쇠뜨기를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데, 이는 쇠뜨기에 센 이뇨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쇠뜨기의 영어이름이 '말꼬리'(horsetail)인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풀이름 하나가 문화를 이렇게 잘 반영할 수가! 우리나라 들판에는 소가 있고, 서양 들판에는 말이 많구나. 그래서 들판에 자라는 같은 풀을 두고서도 한쪽은 '소'를, 서양 쪽에서는 '말'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 것 아닌가. 한자말에도 말풀, 곧 '마초'(馬草)가 있긴 하나, 실제 영어 쪽에 말과 관련된 말이 많다. 이는 바로 '농경'(또는 牛耕) 문화와 '유목' 문화를 대비하기도 한다. 우리 겨레는 본디 유목민이었다고 하나, 원시시대에 유목민 아니었던 겨레가 어디 있으랴. 다만 우리는 일찍 터 잡아 소로 논밭 갈아 농사를 지은 까닭에 소와 관련된 말이 많아진 듯하다. 심지어 소에서 나오는 온갖 부산물도 버리지 않는다. 소와 관련된 나무도 있지만 풀이름으로 소귀나물, 쇠무릎지기, 쇠치기풀 …들이 있다. / 글=임소영 한성대 한국어교육원·책임연구원 [한겨레]

[풀꽃이름] 달맞이꽃 / 임소영

수많은 풀꽃 이름 중에서도 운치 있는 이름을 대자면 '달맞이꽃'이 으뜸일 성싶다. 그 이름만 들어도 달빛이 밝게 흐르는 강변에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는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다.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이름 그대로, 여름밤 달 뜨는 시간에 달빛으로 노랗게 피었다가 날이 밝으면 살짝 붉어지면서 시드는데, 이에 담긴 꽃말도 '기다림, 말 없는 사랑'이다. 그 애절함으로 말미암아 아마도 우리 노래나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풀꽃 이름이 아닐까 싶다.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으로 보면 토박이 식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1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특히 광복 이후 많이 퍼져서 '해방초'(解放草)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도 한방에서는 뿌리를 '월견초'(月見草)라고 하여 감기와 기침에, 씨앗을 '월견자'라고 하여 피부병과 고지혈증에 약재로 쓴다.

달맞이꽃을 영어로는 '해 지는 꽃'(sundrop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풀꽃 이름에서도 우리 겨레는 달을 기준으로 음력으로, 서양은 해를 기준으로 양력으로 살아온 것이 드러나는 듯하다.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계관과 사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생을 포괄하는 섭리는 도종환의 시(아무도 없는 별)에서 노래하듯이 "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 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 …"처럼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 글=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풀꽃이름] 부처손 / 임소영

늘푸른 식물이라도 겨울에는 비실비실하다가 봄이 되고 물이 올라야 비로소 진정으로 푸르게 된다. 마른 바위에 붙어서 사는 '부처손'은 겨울에는 잎이 둥글게 오그라들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새파랗게 살아난다. 그래서 만년초,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回陽草)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잣나무잎 같다고 '권백'(卷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손'은 생김새로 말미암아 붙은 이름인데, 사람 손바닥 모양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다. 부처의 손은 천이나 되어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한 것에서 이름을 딴 듯한데, 잎을 살짝 들어 오무린 모습은 우리 손을 다정하게 잡아줄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부처손에는 정신 안정제 성분인 히스피드린이 들어 있고, 힘이 없을 때 달여 먹으면 기운이 나고, 암을 다스리는 효험도 뛰어나다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풀꽃이름인 '불상화/ 승두화/ 탑꽃'들에는 불교문화가, 서양의 풀꽃이름인 '요셉의 코트(Joseph's coat)/ 부활절 백합(easter lily)'들에는 기독교 문화가 깃들어 있다. 같은 식물이라도 '염주나무'의 영어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욥의 눈물'(Job's tear)이다. 꽃받침통이 골무를 닮은 '골무꽃'은 영어로는 '스컬캡'(skullcap)인데, 이는 천주교 신부들이 쓰는 모자의 모양과 비슷하여 붙은 이름이다. / 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풀꽃이름] 괭이눈 / 임소영

서울에서 고양이 보기는 쥐 보기보다 훨씬 쉽다. 며칠 전에도 그 복잡한 코엑스몰 사철나무 속에서 노란 눈을 빛내고 있는 어미고양이와 새끼고양이들이 구경거리가 된 적이 있다. 도시에서 보는 고양이 눈이란! 캐츠(Cats)라는 뮤지컬도 과연 나올 만하다. '괭이눈'이라는 풀꽃은 고양이 눈처럼 생긴 샛노랗게 피는 꽃으로 말미암아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꽃이 진 다음 열매가 열고 두 갈래로 까만 씨방이 벌어진 모양이 고양이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4월에서 6월 사이에 전국 곳곳의 숲속과 물가에 두루 나는 까닭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찾아볼 수 있다. 산속에서 보는 괭이눈은 더욱 더 맑고 선명해서 지친 도시인에게 힘을 주는 듯하다. '애기괭이눈/ 흰괭이눈/ 바위괭이눈/ 가지괭이눈/ 오대산괭이눈 …'과 같이 종류도 많다. 특이한 점은 꽃이 작아서 날벌레가 보지 못할까 봐 꽃과 잎이 붙어나고, 꽃이 필 때 옆의 잎까지 노랗게 변하는 독특한 생존법을 지녔다. 그래서 큰 꽃처럼 눈에 띄어 벌레를 불러들여서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나면 잎은 조금씩 벌어지고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간다. 보호색도 있지만, 위장색(?)도 있는 자연의 섭리가 놀라울 뿐이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라고 한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를 떠올리며, 일찍 더위를 몰고온 올해 봄이 고양의 눈에 미친 불길을 남겼는지 생각해 본다. / 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