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우리 나무의 세계] 은사시나무(Suwon Poplar) (2021.12.05)

푸레택 2021. 12. 5. 10:28

■ 은사시나무(Suwon Poplar)

분류 버드나무과
학명 Populus alba X P. glandulosa

1970~1980년대의 우리나라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다. 취사와 난방에 나무를 사용하던 시절이다 보니 산에 나무가 남아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산을 푸르게 하고 목재로서도 가치가 있는 나무를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 일의 연구를 맡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교수는 우선 자람이 다른 나무보다 훨씬 빠른 이태리포플러를 수입하여 심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수분이 많은 평지나 강가밖에 심을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산에서도 빨리 자라는 나무가 없을까?’ 하고 고심하던 그는 새로운 나무를 만들어내는 일에 눈을 돌린다. 유럽이 원산지인 은백양 암나무에다 수원의 여기산 부근에서만 자생하는 재래종 수원사시나무의 수나무를 인공적으로 교배하여 새로운 나무를 탄생시켰다. 여러 번의 실제 적응시험에서 이태리포플러보다 오히려 산지에서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지구상에 처음 탄생한 나무는 아빠 이름인 수원사시나무에서 수원을 생략하고, 엄마 이름에서 따온 은을 붙여 ‘은사시나무’란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졌다. 학명에도 두 수종을 교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Populus alba x glandulosa’라고 표기했다.

은사시나무는 1968년부터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었고, 1972년 식목일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이 나무 심기를 권장하자 전국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때 널리 심은 탓에 오늘날 겨울 산에서 하얀 껍질의 꺽다리가 줄줄이 버티고 서 있는 멋쟁이 나무로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심은 지 30~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빨리 자라는 나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나무를 베서 이용하려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나무의 재질이 당초 예상보다 좋지 못하고 가장 큰 사용처였던 나무젓가락의 수요도 줄어들면서 목재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외에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버드나무 종류와 함께 봄날의 골칫거리인 꽃가루가(?) 날린다는 것이다. 사실 은사시나무에서 흩날리는 하얀 솜털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가 아니라 씨앗의 깃털이다. 이 깃털이 코나 눈으로 직접 들어가면 재채기나 잠깐 가려운 증상이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깃털이 날아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다 보니 이 나무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은사시나무는 꽃가루를 맺지 않는 암나무만 골라 심을 수 없다. 원래 사시나무 종류는 암수가 다른 나무인데, 은사시나무는 은백양의 암나무와 수원사시나무의 수나무를 교배하였으므로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같이 달리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장려하던 은사시나무는 이제 심기를 중단한 상태다. 다 자란 나무들도 이용할 사람이 없어서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쓰임 정도로 산자락의 한 구석에 남아 있을 뿐이다.

글=박상진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재의 재질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 그동안 '궁궐의 우리 나무',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우리 문화재 나무답사기' 등 책을 여러 권 썼다.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2》 | 김영사

/ 2021.12.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