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우리 나무의 세계] 미루나무(Eastern Cottonwood, 美柳) (2021.12.05)

푸레택 2021. 12. 5. 10:19

■ 미루나무(Eastern Cottonwood, 美柳)

분류 버드나무과
학명 Populus deltoides

2000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당시의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대박’을 터뜨린 영화로 유명하다. 민족의 비극이 응어리져 있는 판문점, 1976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보면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광복절이 며칠 지난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 내 연합군 초소 부근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감독하고 있던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 50~60명에게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 당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계의 눈은 모두 이 미루나무에 모아지고 죄 없는 우리 국민들은 혹시 전쟁이라도 터질까 봐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하다가 며칠 후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미루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나고 나서 이만큼 집중조명을 받은 일은 전에는 물론 앞으로도 두고두고 없을 것이다.

미루나무는 개화 초기에 유럽에서 수입하여 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버드나무란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국어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 어느 날 ‘미루나무’가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양버들’이란 나무도 대량으로 같이 들어오면서 두 나무의 이름에 혼동이 생겼다. 지금은 포장이 되어 버렸지만 옛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줄기는 곧고 가지는 모두 위를 향하여 마치 빗자루를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의 나무가 양옆으로 사열하듯이 서 있는 길을 어쩌다가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양버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루나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나 버즘나무인 것과는 달리 개화기의 신작로에는 키다리 양버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병을 앓으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한하운은 〈전라도 길〉이란 시에서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이라 했다.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의 옛 황톳길 양옆에 심은 양버들을 두고 시인은 버드나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고 차량이 많아지면서 가로수로 적당치 않아 거의 없어졌다.

미루나무는 전국에서 심고 있는 갈잎나무로서 키 30미터, 지름이 한 아름 이상 자랄 수 있다. 나무껍질은 세로로 깊이 갈라져서 흑갈색으로 되고, 작은 가지는 둥글며 노란빛이지만 2년생 가지는 회갈색으로 된다. 잎은 대체로 삼각형이며,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에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암수 딴 나무로 꽃은 꼬리모양의 꽃차례에 피고 작은 씨가 익는다.

생장이 빨라 나무는 연하고 약하여 힘 받는 곳에는 쓸 수 없다. 주로 성냥개비, 나무젓가락, 가벼운 상자, 펄프원료로 이용되는 것이 전부다. 원래 산에 심어 나무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로수로 제 기능을 다 했다면 이 정도 쓰임새로도 아쉬움이 없다.

미루나무와 양버들은 일반인들에게는 혼동될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미루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잎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길어 긴 삼각형 모양이고, 양버들은 가지가 퍼지지 않아서 커다란 빗자루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잎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짧아 밑변이 넓은 삼각형 모양이다. 이태리포플러도 미루나무와 혼동되는데, 새잎이 붉은빛이 돌고 하천부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주로 이태리포플러다.

글=박상진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재의 재질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 그동안 '궁궐의 우리 나무',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우리 문화재 나무답사기' 등 책을 여러 권 썼다.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2》 |김영사

/ 2021.12.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