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우리 나무의 세계] 사시나무(David Popular, 白楊) (2021.12.05)

푸레택 2021. 12. 5. 10:24

■ 사시나무(David Popular, 白楊)

분류 버드나무과
학명 Populus davidiana

전래 민요에 나무 이름을 두고 “덜덜 떨어 사시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그렇다고 치자 치자나무, 거짓 없다 참나무” 등 재미있는 노래 가사가 많다.

크게 겁을 먹어 이빨이 서로 부딪칠 만큼 덜덜 떨게 될 때 우리는 흔히 ‘사시나무 떨듯 한다’라는 비유를 종종 쓰곤 한다. 왜 하고 많은 나무 중에 하필이면 사시나무에 비유한 것일까? 사시나무 종류는 다른 나무보다 몇 배나 가늘고 기다란 잎자루 끝에 작은 달걀만 한 잎들이 매달려 있다. 자연히 사람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는 미풍이나 제법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들바람에도 나뭇잎은 언제나 파르르 떨기 마련이다.

영어로는 ‘트램블 트리(tremble tree)’라고 하여 우리와 같이 떠는 나무의 의미로 사용했다. 일본 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산명(山鳴)나무’, 즉 ‘산이 울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들은 이름에 떤다는 뜻은 넣지 않았다. 다만 일반 백성들에게 묘지 주변의 둘레나무로 사시나무를 심게 했다. 죽어서도 여전히 벌벌 떨고 있으라는 주문일 터이다.

사시나무는 모양새가 비슷한 황철나무를 포함하여 한자 이름이 ‘양(楊)’이며, 껍질이 하얗다고 하여 ‘백양(白楊)’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버드나무 종류와 가까운 집안으로 둘을 합쳐 버드나무과(科)라는 큰 종가를 이룬다.

백제 무왕 35년(634)에 부여의 궁남지(宮南池)를 축조할 때 “대궐 남쪽에 못을 파고 사방 언덕에 양류(楊柳)를 심었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복원하면서 궁남지에는 온통 능수버들을 심었다. 양류에는 버들뿐만 아니라 사시나무도 포함되어 있으니 조금은 다양한 조경을 하여도 좋을 것 같다. 《훈몽자회》에서는 가지가 위로 향하는 것은 ‘양(楊)’, 밑으로 처지는 것은 ‘류(柳)’라 하여 구분했다.

사시나무는 중부 이북에서 주로 자라는 갈잎나무로 지름이 한 아름 정도에 이르는 큰 나무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으로 어릴 때는 밋밋하며 가로로 긴 흰 반점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얕게 갈라져서 흑갈색이 된다. 잎은 뒷면이 하얗고 가장자리에 얕은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딴 나무로서 봄에 잎보다 먼저 핀다. 열매는 긴 원뿔모양의 마른 열매로 봄에 익으며 씨에 털이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사시나무 껍질은 “각기로 부은 것과 중풍을 낫게 하며 다쳐서 어혈이 지고 부러져서 아픈 것도 낫게 한다. 달여서 고약을 만들어 쓰면 힘줄이나 뼈가 끊어진 것을 잇는다”라고 하여 주요한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시나무라는 좀 생소한 이름보다 흔히 ‘백양나무’라고 부른다. 수입하여 심고 있는 은백양이나 이태리포플러는 물론 외국 문학작품에 나오는 ‘아스펜(aspen)’도 모두 백양나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의 식물학 책에는 백양나무란 이름은 없다. 사시나무가 맞는 이름이다.

글=박상진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재의 재질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 그동안 '궁궐의 우리 나무',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우리 문화재 나무답사기' 등 책을 여러 권 썼다.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2》 | 김영사

/ 2021.12.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