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는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 사람의 일 / 천양희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시집 『오래된 골목』 (창비, 2003)
[감상]
안방극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온통 사랑과 욕망, 사랑과 증오, 사랑과 질투, 사랑과 배신, 사랑과 전쟁, 사랑과 이별, 사랑과 복수로 도배되었다. 현실에서도 사랑과 아스피린, 사랑과 비아그라, 사랑과 비프스테이크, 사랑과 다크쵸콜릿, 사랑과 안개꽃다발, 그리고 자본에 찌든 사랑으로 넘치고 있다. '달콤한 인생'은 '달콤한 자본주의'에서 발원한다. 말할 나위 없이 이 모든 사랑은 모두 자본주의적 사람의 일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지는' 임들의 침묵이다.
공지영의 어느 소설 속 이야기가 생각난다. 먼저 상대방이 싫어진 사람이 아직 상대방이 싫어지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 이를테면 룰을 지킨 사람이 궁지에 몰려 벌을 받는 유일한 게임이란 것. 이건 참 뒤죽박죽의 가혹한 크라잉게임이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어제의 그 사람이 오늘의 그가 아니며, 어제 나와 함께 지낸 사람이 오늘 나와 함께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다. 그가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나로 인해 생각이 바뀐 것이고, 나로 인해 끊임없이 변해왔던 것이다. 내가 썩어가는 냄새를 나는 맡지 못하고 그가 먼저 맡아버린 거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친다.'
그래서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진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말하나 마나 평생이다.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하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 한 쪽을 얻으려 씨앗 하나 심었다 해도 그 모종의 마음 다 비워내지 못하면 그 마음 다 얻기 전에 허허롭고 부질없고 쓸쓸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리며’ 그 하루에 갇힌다.
다시 살며시 씨앗을 받아내고, 계절 내내 가슴에 품고, 어두운 길을 눈감고 걸어간다. 가다가 사람의 돌쩌귀에 걸려 넘어지고 사람의 나무에 기대기도 하다가 바람이 불면 사람의 풀밭에 쉬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그 돌쩌귀이다가 풀잎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기도 한다. 누가 누구의 돌쩌귀였는지 풀잎인지 나무인지는 묻지 말고 다만 사람의 일이라고만 하자. 하지만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는 말자.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글=권순진 시인)
/ 2022.01.0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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