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곡선의 말들' 김선태 (2022.01.05)

푸레택 2022. 1. 5. 20:35

■ 곡선의 말들 / 김선태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무심코 지나치는
걸어가다, 돌아가다, 비켜서다, 쉬다 같은 동사들......
느리다, 게으르다, 넉넉하다, 한적하다, 유장하다 같은 형용사들......
시골길, 자전거, 논두렁, 분교, 간이역, 산자락, 실개천 같은 명사들......
직선의 길가에 버려진
곡선의 말들

- 김선태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 중에서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우리들의 언어는 수학적일 때가 많다. 세모, 네모, 육각형, 직선, 무한대(∝), 파이(π), 루트(√), 곡선의 말이 있다. 세모의 말들은 뾰족하고 각이 져 있다. 세모의 말들로 인해 상대방은 상처를 받는다.

네모의 말은 각은 있어도 상대방을 찌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앙금을 남기게 한다. 육각형의 말은 거의 각을 숨기고 있어서 격려 같기는 한데 부딪치면 날이 있다.

직선의 말은 숨김이 없고 솔직해서 들을 때는 섭섭해도 지나고 나면 군더더기가 없다.
무한대의 언어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해석이 어려운 말들의 나열이다. 파이의 말은 시작은 있으나 마무리를 내릴 수 없는 말이다.

곡선의 말은 그냥 둥글다. 그 둥근 언어들을 듣고 있으면 편안하다. 직선의 길가에 버려진 곡선의 말을 찾아가 본다.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돌아가다’는 말, 누군가와 마주치면 양보해 주는 ‘비켜서다’는 말, 가다가 힘들어지면 쉬어가는 것도 좋으리. 걷는 길을 ‘느리게, 넉넉하게, 유장하게’ 걸으면 좋지 않은가.

곡선의 언어에는 평온함이 있다. 마음을 놓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사는 일도 이렇게 쫒기지 않고 ‘시골길에 자전거를 타고 논두렁을 가다가 멀리 분교의 느티나무를 보기도 하고 간이역을 지나치면서 산자락 끝에 흐르는 실개천 개울 소리를 듣기도 하고…’

이렇게 살면 안될까. 이런 곡선의 언어들 속에서 느리게, 쉬엄쉬엄 가면 어떨까.

글=수필가 박모니카

/ 2022.01.0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