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십이음계》 (삼애사, 1969)
“이 소하고 나하곤 같이 죽을 거래이…”
“(소가 먼저 죽으면 장사) 치러 줘야지, 내가 상주질할 긴데, 허허.”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서 마흔 살 소를 바라보며 팔순 농부가 한 말이다. 이려, 워워, 어저저, 이려쩌쩌 소리에 맞춰 메고 지고 갈고 끌면서 사십여 년을 동고동락한 일소[農牛], 이런 소는 가축이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살아있는 입, 생구(生口)다.
시 속의 ‘물 먹는 소’도 할머니와 함께 논밭을 일구고 짐을 져 나르며 한생을 늙었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을 함께 일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의 발잔등이 부은 것도, 서로가 적막한 것도 이심전심했을 것이다. 소의 목덜미에 얹은 할머니 손바닥의 어루만짐이 어르는 침묵의 결이고 마음의 길이다. 물도 먹었으니 묵화의 농담(濃淡)처럼, 흑백의 여백처럼, 번짐이든 스밈이든 지남이든 그윽할 것이다. 그득한 적막 속에서 겨울을 향해 함께 저물어간다는 공감의 공생, 연민의 연대, 늙음의 늑장, 지난한 지남들, 그러한 쓰담쓰담! (글=정끝별 시인)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감상]
김종삼 시인하면 「묵화(墨花)」가 떠오른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가슴에 오래 남은 명시(名詩)다. 김종삼 시인의 시는 대부분 짧다. 어눌하지만 깊이가 있다. 누군가 시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우리 어머니 어시장에서 아나고 회 칠 때 쓰던 나무 도마에 박아둔 대못이라고, 연탄공장에서 일하다 청력을 잃은 우리 아버지가 매달 받아오던 누우런 월급봉투라고. 삶, 사람, 문학이다. 시도 그 속에 있다. (글=김현욱 시인)
/ 2022.01.0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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