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 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시 해설]
새해를 맞는 가슴들은 저마다의 기대에 부풀어 있고 새로움에 들뜬다. 안간힘 다 해 발돋음 해 본 지난 한 해, 되돌아보면 외로운 일, 억울한 일, 슬픈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루고자 꿈꾸었던 소망들은 묵은해의 찌꺼기가 되어버리고, 이제 다시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바란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때대로 외롭고 억울하고 슬픈 상황에 처한다. 그들을 극복해가며 순간순간 기쁨과 행복도 맛볼 터이다. 우리 일상이 그러하지 않은가. 하지만 송수권 시인은 지나간 모든 아픈 추억들은 하얀 눈으로 말끔히 씻어버리고 더 뜨거운 가슴으로 특별한 새해를 맞자고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아픔과 억울함, 답답함, 아쉬움까지도 후회 없이 던져버리자. 지난 1년을 살아내면서 그래도 어느 면 새로워진 자신을 기뻐하며, 새해에는 더 새로워지기를 다짐하는 설렘으로 새해 아침을 맞자. 모든 생명이 성실을 다하여 꽃피울 장엄한 새해여!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글=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2021.01.0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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