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의금 / 서봉교
같은 직장에서 20년 넘게 함께 근무하던
띠 동갑 형님이 소천 하셨는데
살아생전 문병 근처에도 못 갔다
산다는 게 뭐 그리 바쁜지
같이 근무하던 시절
나도 다른 직원들도 그 형님 도움
참 많이도 받았는데
막상 부고를 듣고 야근을 하느라고
서랍 속 봉투를 꺼내서 조의금을 넣는데
하필 주머니에 삼만 원만 있을 게 뭐람
같이 근무했던 정으로는 오만원도 십만원도
더 넣어야 하지만
그냥 넣어 보내면서 왜 그리 미안한지
사람은 누구나 저승 갈 때 삼십 원만 갖고
간다고 하지 않던가?
삼오제 지난 후 그 형님 맏이를 만났는데
형님을 만난 듯
내내 미안했다
- 동인지 《형상 21 제14집》 (조선문학사, 2012)
[감상]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의 부음을 받았다. 죽기 두어 달 전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딱하다는 생각과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소회가 잠시 스쳤을 뿐 문병을 가진 않았다. 어쩌다 모인 자리에서 마주칠 때 안부 몇 마디 주고받는 게 고작인 사이라 마음으로 애도는 하지만 처음부터 조문하거나 조의금을 마련할 의사는 없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껏 그만한 거리의 친소관계를 유지했던 친구들 가운데도 여건이 따르고 내킬 경우엔 더러 경조사에 참석하고 눈도장도 찍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건 친소의 거리가 아니라 품앗이 관계적 소비에서 일방적 지출이 될 개연성이 크다는 우려가 진짜 구실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가 정승은 아니지만 정승의 죽음처럼 외면 받는 건 아닐까.
생각이 그것에 미치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고 개운치 않아 스스로가 얍삽한 인간처럼 여겨졌다. 누군가의 부음은 가야하나 말아도 되나서부터 늘 조잔한 고민들을 하게 하는데, 가끔 멍에와 속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큰맘 먹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빈소가 마련된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조문객 가운데 아는 얼굴은 별로 뵈지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알 리 없는 상주에게 아버지 친구라고만 하고선 조의금 함에 흰 봉투를 넣었다. 되돌려 받을 가능성도 없고 조문을 빙자한 비즈니스도 되지 못하지만 찜찜한 마음은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마음보다 내 자신에 대한 위무가 먼저였으니 나의 조문은 가짜다. 이전에도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서 가짜인 내 메마른 마음을 들여다볼 때가 많았다. 축하와 애도보다 봉투 걱정을 앞세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의 에피소드가 졸시 「개별경제학」으로 엮였다. "입맛 당기고 호기심도 당기는 점심특선 웰빙비빔밥/ 정가가 육천 원이라……잠시 서성이다/ 사천 원짜리 그냥 비빔밥으로 낙찰 본다/ 문자 받고 가야 하나 말아도 되나/ 머리 굴리다가 찾은 고등학교 동창 초상집에/ 미리 준비해간 부의금 삼만 원/ 다른 녀석은 대개 오만 원이고 십만 원도 했다는데/ 잠시 망설이다 돌아서서 슬그머니 이만 원을 더 보탠다/ 이천 원의 내핍과 이만 원의 체면/ 스스로 쩨쩨해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유/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아/ 그래서 늘 부자가 부럽기는 부럽다" 이 시는 서봉교 시인의 갸륵하고 따뜻한 3만원+알파의 마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시인의 진솔함이 고스란히 읽히는 시를 대하면서 부끄러운 내 속물성이 문득 떠올랐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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