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 화분 / 김점용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 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 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마흔 넘게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오늘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 시집 『메롱메롱 은주』 (문학과지성사, 2010)
[감상]
화분은 그것에 식물이 심겨졌을 때 존재의 의미가 있다. 빈 화분은 용도가 유예되거나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 베란다에 오래전부터 놓여있던 빈 화분은 사실상 제 본성이 퇴화되어 그 의미를 되살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적인 물성을 갖기도 어렵다. 마치 사람에게 있어서 해체된 가족이나 아이들이 다 떠난 폐교, 무너진 사랑, 대못이 박히고 굳게 문이 잠긴 단무지 공장과도 같다.
세상의 어떠한 화분도 식물에게는 자유로운 환경일 수 없다. 대부분은 잘리고 비틀리고 오므려지는 억압된 상황에서 자라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다고 보면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이다. 사람 또한 화분과 같아서 가정이나 학교, 군대에서나 직장에서나 나아가 국가 안에서도 모두 규격화된 틀에 맞추어 제어되고 비틀리고 팔 다리가 묶여 자유로부터 생명이 간섭 당한다.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떨쳐버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시인은 화분 속에 갇혀 되돌이표처럼 자기복제하며 순환하는 뿌리의 근원적 슬픔에 대해 사유한다. ‘꽃이 꽃에서 오듯 나도 내가 만든 거 아닐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가 잠시 빌린 게 아닐까’라는 추상을 그린다. 그러니까 빈 화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의 기원이란 바람과 햇살과 물과 먼지가 아닐까’라며 출생비밀을 스스로에게 캐묻는다.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용도 폐기된 화분 너머의 깊은 응시로 자기 정체성을 묵상한다. ‘오랜 공명이 오늘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갔다. 씨를 심지 못한 빈 화분에서 비슷한 처지의 마흔 넘은 자기 몸을 환기하며 자위한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몸 밖으로 길 내어 빈 화분 속에 사유의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있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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