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늙은 소나무 / 김광규
새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자연보호를 받고 있는
늙은 소나무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의 몸짓 보여주며
백여 년을 변함없이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송진마저 말라버린 몸통을 보면
뿌리가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의 고달픔 짐작도 못하고 회원들은
시멘트로 밑둥을 싸바르고
주사까지 놓으면서
그냥 서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도
늙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
오래간만에 털썩 주저앉아 너도
한번 쉬고 싶을 것이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기에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너의 졸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백여 년 동안 뜨고 있던
푸른 눈을 감으며
끝내 서서 잠드는구나
가지마다 붉게 시드는 늙은 소나무
ㅡ 시집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현대시, 1998)
[감상]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혹은 자연을 정복한다며 우리 인간이 그동안 행한 자연 파괴는 이미 심각한 위험수준이다. 그렇게 자행된 훼손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자연이 곳곳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서서히 상흔을 드러내고 있다. 생태보존과 환경보호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행해졌던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욕망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이라든가 ‘자연보호’란 미명 아래 무리하게 생명을 잇는 식물들을 볼 때 이래도 되는지 찝찝한 의문이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자기 이익을 위해 늘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고 희생시켜왔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향상되었지만 언젠가는 그 자연에 역습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막연한 불안 같지만 인간들끼리 조장한 전쟁공포의 산물인 사드 전자파 위험성도 안심하라고 함부로 말할 처지는 아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모하고 오만한 파죽지세가 이제 거의 한계에 달한 게 아닐까 싶은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인간 중심의 자연관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새마을회관 앞 ‘늙은 소나무’를 보면서도 시인은 생각이 많아졌다. 소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일제의 송진 공출로 찍힌 V자 삽날에도 잘 견뎠고, 벼랑 끝 바위에서도 백년간 푸름을 잃지 않는 것이 소나무다. 그런데 마을회관 앞마당의 늙은 소나무는 이제 너무 늙어 송진마저 말라버린 채 잠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나무에다 주사를 놓고 시멘트를 처바르면서까지 살아있게 하려고 용을 쓴다. 수목의 외과수술은 상처나 공동이 너무 크고 깊지 않을 때 실행해야 나무의 건강과 미관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손을 댈 것은 아니다.
‘백여 년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사람들을 위해 할 만큼 다 했는데 계속해서 인간을 위한 복무를 강요한다면 그건 인간의 욕심이고 너무 가혹하다. 나무도 생명이라 수명이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걸 억지로 연장시키려 하는 짓을 자연보호라 생각한다면 그건 허울이고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이기의 다름 아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식물은 저마다 타고난 생명을 힘차게 구가하고 한살이가 끝나면 자연의 무기물로 돌아가도록 하는, 그 순환의 질서를 돕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환경을 지키는 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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