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참나무' 이윤택 (2021.12.01)

푸레택 2021. 12. 1. 19:53

■ 참나무 / 이윤택

참나무 한 그루 서 있다
그래 내가 물었다
참나무야,
너는 어떻게 늙어가니?
가능한 시선을 멀리 두고 살지
그러면 아직 나를 중심으로
별들은 순행하고
하루쯤 늦은 신문이라도 받아 볼 수 있겠지

좀 외진 곳에 살더라도
그늘을 넓게 확보하는 게 좋아
지금 세상은 빛을 너무 받아 지랄발광하지
깊게 패이고 썩은 몸에서 맛나는 버섯이 자라고
딱정벌레 같은 가족은
내 몸에서 흐르는 진땀을 먹고 산다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담는 그릇
언젠가 허옇게 마른버짐 피우며 부러지겠지
그때는 군불 때는 땔감
그때가 사실 내 삶의 절정이지
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면
탁, 틱, 툭 짧은 외마디 비명
그대로 숯이 되겠지
숯에 스며든 격문 같은 시 전사 같은 삶
그대로 천년쯤 시간을 견디며
사람을 기다리고 있겠지

ㅡ 《현대시학》 2011년 3월호

[감상]

기적을 증거하기 위해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가냘픈 풀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작은 도토리가 커다란 참나무로 자라는 것, 이보다 더욱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으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순리 같지만, 만약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일어나는 희한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재앙일 것이다. 참나무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은 ‘가능한 시선을 멀리 두고 살’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참나무에게 있어 너무나도 지당한 몸가짐이다.

참나무는 들판을 보고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있다. 참나무가 가을에 도토리를 맺을 때 멀리 들판을 내다보고서, 들판의 곡식이 풍작이면 참나무는 자신의 번식에 필요한 만큼의 도토리만 열리게 하고 반대로 들판의 곡식이 흉작이 들면 참나무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를 맺어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열매를 먹게 한다는 것이다. 참나무가 무슨 신통방통한 능력을 가졌거나 인간 세상을 굽어 살펴주는 신성한 존재도 아닐 터인데, 이는 오랜 세월 농부들의 경험치에 근거한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도토리를 구황식품 가운데 첫번째로 쳤다. 참나무는 도토리를 제공해 굶주림으로부터 사람을 구해내줄 뿐 아니라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나무다. 땔감으로 이만한 나무도 없다. 그리고 장작이 다 타고 남은 숯은 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아주 옛날부터 참나무는 서민들의 힘겨운 삶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삶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더구나 참나무에게 삶의 상당부분을 의지하는 생명은 사람뿐 아니다. 무려 3백여 종의 생명들이 참나무 한그루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하니 참나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셈이다.

죽어 넘어진 참나무 한 그루도 혼자 조용히 썩어 사라지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되어줌으로써 참나무의 새로운 삶이 시작한다. ‘썩은 몸에서 맛 나는 버섯이 자라고 딱정벌레 같은 가족은 흐르는 진땀을 먹고 산다’ 처칠도 ‘영국산 오크는 살아서는 숲속의 왕으로 군림하고 죽어서는 바다를 지배한다.’ 며 참나무를 격찬했다. 그리고 땔감으로 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때가 실은 ‘삶의 절정’일 것이다. (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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