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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수필] '나무의 위의' 이양하(李敭河) (2021.11.14)

푸레택 2021. 11. 14. 14:43

■ 나무의 위의 - 이양하(李敭河)

첫여름은 무엇보다 볕이 아름답다. 이웃집 뜰에 핀 장미가 곱고, 길 가다 문득 마주치는 담 너머 늘어진 들장미들이 소담하고 아름답다. 볕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장미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첫여름은 무엇보다 나무의 계절이라 하겠다. 신록(新綠)이 이미 갔으나 싱싱한 가지 가지에 충실한 잎새를 갖추고 한여름의 영화를 누릴 모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주는 기쁨과 위안이란 결코 낮춰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살구, 복숭아, 매화, 진달래, 개나리, 장미, 모란, 모두 아롱다롱 울긋불긋 곱고 다채로워 사람의 눈을 끌고 마음을 빼내는 데가 있으나, 초록 일색의 나무가 갖는 은근하고 흐뭇하고 건전한 풍취에 비하면 어딘지 얇고 엷고 야한 데가 있다. 상나무, 사철나무, 섶, 도토리, 버들, 솔, 잣, 홰, 느티 - 우리 동리에서 볼 수 있는 나무로서 앞서 말한 꽃에 비하여 손색이 있을 것이 없다. 또, 모든 나무는 각기 고유한 모습과 풍취를 가진 것이어서 그 우열을 가리고 청탁을 말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내 가까운 신변에 이 때가 되면 오래 보지 못한 친구를 찾듯이 돌아다니며, 그 아름다운 모습을 특히 찾아보고 즐기는 몇 그루의 나무를 가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는 내 집의 한 포기 모란이 활짝 피었다 지는 무렵, 온 남산을 가리고 하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는 앞집 개쭝나무다. 참말로 잘생긴 나무다. 훤칠하니 높다란 키게 부채살 모양으로 죽죽 뻗은 미끈한 가지가지에 채통치고는 좀 자잘한 잎새를 수없이 달았다. 보아서 조금도 구김새가 어뵤고 거칠매가 없다. 어느 모로 보나 대인 군자의 풍모다. 바람 자면 고요히 깊은 명상에 잠기고, 잔바람 일면 명상에서 깨어 잎새 나붓거리며 끊임없이 미소짓고, 바람이 조금 세차면 가지가지를 너울거리며 온 나무가 춤이 된다.

아침 산보 오고 가는 길에 매양 볼 수 있는 친구는 길가 두 집에 이웃하여 나란히 섰는 두 그루의 히말라야 으르나무다. 허구한 세월 히말라야 높은 준령의 거센 바람에 인종해 온 먼 조상의 유전인지, 가지가 위로 뻗지 않고 아래로 숙였다. 검고 줄기찬 줄기와 가지에는 어울리지 않게 보드랍고 가느다란 잎새가 소복소복 떨기를 지어 달렸다. 어떻게 보면 가지마다 고양이가 한두 마리씩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고, 가지 끝마다 싹터 나오는 새 잎새는 고양이 발톱같다. 심지어 몇 해나 되는 나무인지 아직 두서너 길밖에 되지 못하나 활짝 늘어져 퍼진 가지들이 너그러운 품이 이미 정정한 교목(喬木)의 풍도(風度)를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 내가 일상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친구는 우리 교정 한가운데 섰는 한 그루의 마로니에다. 가까운 주위의 자자부레한 나무들에 가리어 있어 그 전모를 한 눈에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나 나무로서는 역시 잘 된 나무다. 잎새는 밤나무보다 조금 큰 것이 별로 신기로운 것이 없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줄기 밑둥에서부터 시작하여 총총히 뻗은 데다 나무 잎새가 또 그 가지가지 밑에서부터 끝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 나무의 속으로 햇빛도 좀처럼 뚫지 못하고 바람도 웬만해서는 흔들지 못하는 깊고 짙고 고요한 그늘을 가졌다. 꿈의 나무라고도 할까. 아침, 저녁, 대낮, 한밤, 꿈 안 꾸는 순간이 없다. 무슨 꿈을 꿀까. 무척 다채로운 꿈일 것으로 생각되나, 그 깊은 꿈은 얼른 사람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아무튼, 피와 살과 냄새로 된 사람의 어지러운 꿈이 아닐 것은 분명하고, 그 가운데 평화와 정일(靜逸)과 기쁨이 깃들였음을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걸엇길 한 오 분, 십 분 걷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성균관 안에 온 뜰을 차지하고 구름같이 솟아 퍼진 커다란 은행 나무를 볼 수 있다. 한말(韓末)의 우리 겨레의 설움을 보았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도 겪고 좀더 젊어서는 국태민안한 시절, 나라의 준총(駿驄)이 청운의 뜻을 품고 명륜당에 모여 글 읽던 것을 본 기억도 가진 나무다. 이젠 하도 늙어 몇 아름 되는 줄기 한 구석에는 동혈(洞穴)이 생겨 볼상 없이 시멘트로 메워져 있지만, 원기는 여전히 왕성하여 묵은 잎새 거센 가지에 웬만한 바람이 불어서는 끄떡도 하지 않는 품이, 쓴맛 단맛 다 보고 청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다.

그렇가. 이러한 나무들에게는 한때의 요염을 자랑하는 꽃이 바랄 수 없는 높고 깊은 품위가 있고, 우리 사람에게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점잖고 너그럽고 거룩하기까지 한, 범할 수 없는 위의(威儀)가 있다. 하찮은 명리(名利)가 가슴을 죄고 세상 훼예포폄(毁譽褒貶)에 마음 흔들리는 우리 사람은 이러한 나무 옆에 서면 참말 비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다. 이제 장미의 계절도 가고 연순(年順)의 노령도 멀지 않았으니 많지 않은 여년(餘年)을 한 뜰에 이러한 나무를 모아 놓고 벗 삼아 지낼 수 있다면 거기서 더 큰 정복(淨福)은 없을 것 같다.

/ 2021.11.1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