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에 달린 잎새들 / 김규련
무심한 나무도 조석으로 대하면 정이 묻어오는 것일까.
나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정문에 바짝 붙어 감나무 한 그루가 거목으로 서 있다. 그러니까 나는 싫든 좋든 출퇴근할 때마다 나뭇가지 밑으로 스치며 드나들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사계절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그리고 보니 묘하게도 애착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할까. 어쩌다 마음이 황량할 때면 감나무 밑에 와 서성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괜히 감나무 밑에 와 머뭇거리고 섰다. 무성한 잎 사이로 여기저기 하늘 몇 자락이 쏟아지고 있다. 연신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하얀 감꽃 언저리엔, 아득히 지나간 세월의 그림자가 아롱거린다. 웬일일까. 감꽃 목걸이를 드리운 소녀가 문득 뇌리를 스친다. 옛날 어렵게 살던 무렵, 여름이면 으레 어머니는 풋감을 따다 잿물에 담궜다. 떫은 맛이 가시고 나면 그것을 손에 쥐어 주시곤 했다. 어머니의 그 따뜻한 정이 오늘따라 왜 그리워지는 것일까. 괜히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아 얼른 먼 데 산을 바라본다.
갖가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정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말고, 다시 돌아와 감나무 밑에 서 있다. 거북의 등같이 균열이 난 감나무 둥치에 기대서서 잎새를 우러러 본다. 푸른 녹즙이 주루루 흘러내릴 것만 같다. 감나무의 녹음이 곧 여름 빛깔의 상징이라고 할까. 감나무는 철에 따라 그 빛깔이 극명하게 바뀐다. 그러면서도 그 빛깔이 바로 그 계절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늘 감명을 주는 것은, 철따라 변하는 감나무의 영상이 아니라 거기에 달린 저마다의 의미이리라. 굵은 새싹이 툭툭 터져 나오는 감나무의 봄은 생명의 환희였다. 검푸르게 짙은 감나무의 녹음은 창조의 의지였고, 붉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선 감나무의 가을은 성취의 기쁨이었다. 잎도 열매도 훨훨 털어 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찬바람에 드러낸 채 묵묵히 서 있는 감나무의 나목은 선정의 자세였다고 할까. 노송 같은 운치도 없고 고매 같은 향기도 없으며 느티 같은 멋도 없는가 하면, 벽오동 같은 서기도 없는 감나무를 내가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그 의미 탓인지도 모른다. 재주가 모자라면 덕으로 채우고, 덕이 모자라면 성실로 채울 것을 암시하는 듯한 감나무의 슬기가 어쩌면 더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할까.
감나무 둥치에 체온 같은 것이 느껴온다. 수액이 고동치며 돌고 있는 모양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를 쉬지 않고 빨아올리는 수분, 땅과 하늘과 수중에서 살아가는, 온갖 유정물은 언젠가 목숨이 다하여 죽게 되면 흙과 물과 바람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잡초로 살다 간 이름 없는 사람의 땀과 전장에서 죽어간 병사의 핏물과 정한에 사무쳐 남모르게 흘린 어느 여인의 눈물도 어쩌면 저 수액 속에 스며들어 함께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인의 손목을 잡아 보듯, 따뜻한 나의 손으로 감나무 가지를 살며시 쥐어 본다. 한 줄기 바람이 감나무 잎새를 흔들고 지나간다. 어디서 온 바람일까. 우랄 산맥을 넘고 고비 사막을 지나고, 서해 바다의 고배를 흔들어 놓고 달려온 바람인가. 바람 속에는 남몰래 숨어서 속삭이는 어느 젊은 남녀의 사랑의 밀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치는 군중의 함성이며 환락의 밤거리에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며 온갖 목소리가 감춰져 있으리라.
발길을 옮겨 정원을 산책해 본다. 무심코 서 있는 소나무, 느티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 백일홍, 목련, 향나무 들이 동시에 일어서서 환호를 지르며 나를 맞는다. 정원에 존재하는 나무들과 잔디풀, 억새와 잡초, 산새와 다람쥐, 개미와 벌레 그리고 나. 이것들이 모두 하나의 큰 생명 안에서 잠시 나타나 제 몫의 삶을 살다 돌아가는 저마다 작은 생명임을 말해 오고 있다.
개자겁(芥子劫)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생명들이 수없이 돌며 명멸하는 동안 얼마나 자주 서로의 육신이 섞이고 엇갈렸는지 짐작이 간다. 지천으로 무성한 미루나무 잎에서도 하찮은 나비의 날개깃에서도 아득한 옛날의 나의 육신의 흔적이 엿보인다. 문득 연기(緣起)의 법칙과 조화의 논리가 온 누리에 가득 차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의 큰 생명의 본질은 매여 있지 않고 풀려 있다.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 멈춰 있는 듯 움직이고 있다. 굳어 있지 않고 항상 부드럽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다. 연신 받아들이고 연신 드러내고 있다. 급하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가 하면 사랑하지도 않는다.
부질없는 상념을 털어 버리고 저만치 정원에 놓인 바위에 가서 앉아본다. 싱그러운 감나무 잎새들은 상금도 나의 시선을 붙들고 좌 주질 않는다. 어찌 된 일일까. 부끄러운 딘간의 몸짓들이 번득번득 잎새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순결을 외치면서 타인의 항구를 기웃거리고 있다. 삶의 주제는 사랑이어야 한다면서 명성과 인기에 집착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매놓을 것 같으면서도 자기의 야망만 이뤄가고 있다. 학처럼, 난처럼 살고 싶다면서 권세와 재물을 갈구하고 있다. 배운 사람일수록 가진 사람일수록, 지체 높은 사람일수록 위선의 갑옷이 더욱 두텁고 견고한 것은 아닐까.
문득 희랍의 철인 ‘탈레스’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꾸짖는 일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 했던가. 진작 부끄러운 몸짓의 사람은 내 자신이었던 것을. 위선의 갑옷을 하나하난 벗어봐야겠다. 더러는 살점이며 피가 묻어 나오리라. 뭣인가에 얽매이고 갇힌 내 자신을 풀어 주고 열어 줘야겠다. 내 심혼 깊숙이 자리한 또 하나의 나에게, 내 몫의 삶을 알아보고 본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인간이 때로 기도한다는 것, 염불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또 하나의 자신에 대한 독백이요 다짐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두가 자기 몫의 삶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어야 하리라. 감나무는 어느덧 내 앞에 거룩한 말씀으로 서 있다.
/ 2021.11.0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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