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그 겨울의 날개' 김우종 (2021.10.30)

푸레택 2021. 10. 30. 10:52

■ 그 겨울의 날개 / 김우종

그토록 황홀한 변신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놈은 분명히 눈도 입도 없고 다리도 날개도 없는 병신이었다. 그런데도 죽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찬 서리가 내리던 어느 가을날 들판의 나무줄기에서 나는 놈을 발견하고 집에 가져와 분명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 후 작은 상자 속에 밀폐시켜버렸었다. 바늘구멍을 알아야만 여는 나의 비밀상자다.

그 후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나는 온갖 비밀스런 것들의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비취처럼 반짝이는 푸른 날개를 달고 나온 나비, 그리고 그 병신 벌레는 허물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황홀한 탈바꿈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상한 벌레는 밀폐된 공간에서 겨울을 나고 오랜 침묵 끝에 드디어 마술을 부리듯 나비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비로 변신한 그는 상자 속에서 단 한 번도 푸른 하늘을 날아보지 못한 채 가엾게 죽어 있었다.

내가 그것을 자살이라고 믿고 싶어한 것은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 후 나는 고향을 떠나 개성의 송도중학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15 이듬해에 나는 전국 학생미전에 특선하면서 장차 화가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운명의 장난으로 나는 가던 길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다는데 하급생에 대한 상급생의 억압은 여전했었다. 미술반의 다른 애들은 모두 반장에게 경례를 부쳤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미술반은 상하 주조관계가 요구되는 군대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장은 이런 나를 마침내 지하실로 끌고 내려갔다. 힘이 센 상급생 또 한 명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를 챈 나는 ‘기왕에 맞을 바엔’하는 생각으로 먼저 반장 녀석의 턱을 힘껏 갈겨버렸다. 그런 후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몇 시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 후 미술반을 떠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방과 후가 되면 혼자 암실 같은 하숙방에 돌아와 자신을 밀폐시키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분노와 외로움을 안으로 삭이며 나는 차차로 독서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술 지망생이 문학 지망생이 된 운명적 변신 과정이다. 그렇지만 먼 훗날 내게는 문학 대신 그림으로 돌아서기를 강요당하는 또 한 번의 운명의 장난을 만났다.

유신 독재 반대 투쟁이 계속되던 1974년 초 여름, 오래간만에 감옥에서 나온 나는 기약 없는 긴 휴식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동안 그립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지만 거리에선 날마다 최루탄이 터지고 나처럼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어서 나를 멀리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두문불출이 시작되었다.

제자들이 가끔 다녀갔다. 검찰청까지 와서 오랏줄에 묶인 나를 보고 갔던 정호승은 《현대시학》에 발표했던 시를 캔트지에 써서 가져왔다. 내게 관한 시다.

집안에만 칩거하면서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시간도 많았다.

집이 회기동의 학교 근처여서 문밖에 나가면 거북한 일도 자주 있었다. 학생들은 나를 만나면 언제 다시 돌아오느냐고 묻고 동료 교수들을 만나면 서로 어색한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나는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원고를 쓰는 일이다. 그래서 출옥 일 년 만에 낸 것이 에세이집 <<그래도 살고픈 인생>>이다. 그런데 곧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출판 배포 판매 금지조치를 당했다. 다음에는 현실비판이 없는 고전 비평 쪽의 평론집 가본假本을 만들어 문공부에 냈지만 심의 자체를 거부당했다.

할 수 없이 대학 교문 앞에서 좌판을 벌려놓고 땅콩 장수라도 하려다가 가만두고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수직도 문필업도 막힌 막다른 길에서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한 생존수단이었다. 그림을 팔아서 쌀도 사고 연탄도 사고 애들 학비 마련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그림을 본격적인 업으로 삼으며 미술협회에도 가입하여 어릴 적에 가려던 길로 되돌아간 것이다.

나는 강남의 상도동 약수터로 이사했다. 문밖에서 제자나 동료 교수들을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찬바람에 실려서 뒷산으로부터 낙엽들이 우수수 날아오면 마당의 베짱이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곧 겨울이 온다.

나는 꽃나무들을 짚으로 싸다가 어린 딸을 불렀다.

“나리야, 빨리 나와. 이것 좀 봐라.”
“아빠, 그게 뭐야?”
“번데기야.”
“어머, 징그러워.”

“그래. 못생겼지. 애벌레는 얼마쯤 자라고 나면 저렇게 이상한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 긴긴 겨울을 나게 되는 거야. 답답하고 춥고 어두운 세상이지. 그렇지만 봄이 오면 번데기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을 수 있는 거야.”
“어머 멋있어. 그게 정말이야?”

“그럼, 나도 옛날에 이런 번데기를 잡아다가 곽 속에 담아 두었더니 나비가 되었단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벌레들처럼 일생에 몇 번은 탈바꿈을 하지. 그렇지만 그냥 바뀌는 건 아무 뜻도 없어.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새 생명으로 탈바꿈을 해야지. 긴긴 겨울의 외로움을 참아내고 말이야.”

“아빠, 우리도 이 번데기 상자 속에 넣어 두자.”
“아니, 그건 좋지 않아. 나비가 된들 상자 속에 갇혀 있으면 어찌 날 수 있겠니? 날개는 날기 위해 달려 있어. 그러니까 날 자유가 없는 나비는 살아남을 이유가 없어지지. 날개 있는 것한테 날 자유가 없는 슬픔은 애초부터 날개 없이 날지 못하는 슬픔과는 전혀 달라. 아주 비참한 거야. 네가 크면 무슨 뜻인지 더 잘 알게 될 거야.”

우리는 번데기를 그 자리에 두고 어서 긴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봄이 와서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멋지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자고. 그러나 내가 날 수 있는 봄은 언제 올지 약속할 수도 없었고 내가 기다리는 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어린 것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 글 속에는 70년대 유신 독재정권 하의 소위 ‘문인간첩사건’ 등 문인 수난 시절이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1974년 1월에 나는 경희대 교육대학원 강의 도중 육군보안사로 끌려가고 고문 끝에 문인간첩단으로 날조되어 투옥되었다. 군수사기관이 나를 그렇게 한 것은 내가 참여문학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검사는 이면적 동기를 설명했다. 참여문학운동은 독재를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으로 이어진 운동이다. 이 글은 내가 복권된 1980년에 《수필문학》 2월호에 발표된 후 최근에 몇 자 수정한 것이다.)

글=김우종 「그 겨울의 날개」

 

/ 2021.10.3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