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아버지의 구두' 양민주 (2021.10.26)

푸레택 2021. 10. 26. 18:22

■ 아버지의 구두 / 양민주

  동생 테오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라는 그림을 보면 아버지가 그립다. 이생진 시인은 “이 구두는 고흐 자신인데, 한 짝은 생활고에 시달린 슬픈 얼굴이고 다른 한 짝은 고난을 극복한 후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무게와 인생의 굴곡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구두는 말이 없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다. 새벽잠 없던 아버지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여 집안을 마치 아름다운 공원처럼 꾸몄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파트 베란다 한가득 야생화와 춘란을 기르고 있어 빨래를 널지 못해 불편해 하는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곤 한다. 아버지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팔순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육순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새 구두한 켤레를 남겨놓고….

  아버지는 그 당시로서는 많이 배웠지만, 야윈 몸으로 장손 역할 한답시고 도회지 생활을 하는 대신 시골에서 물려받은 전답으로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의 동생 즉 나의 숙부는 부산에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살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등록금이나 농자금이 필요할 때는 동생을 찾아가 손을 벌리곤 하였는데 돌아오실 때마다 신발이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보다 덩치가 큰 동생이 신던 구두를 얻어 신고 왔다. 그것은 새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낡았고 당신의 발보다 족히 몇 센티는 더 큰 구두였다.

  아버지는 그 당시 농사꾼이면 누구나 신던 흰 고무신이나 장화가 없었다. 식구가 많아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위해 들로 산으로 또는 외출 시에도 한복에 어울리지 않게 검고 커다란 구두를 끌고 다녔다. 학의 다리처럼 가는 다리에 걸맞은 커다란 구두는 메마른 땅에서는 흙먼지를 일으키고 진땅에서는 자주 벗겨지곤 했다. 하루의 끝에서 구두를 벗고 구멍 난 양말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거죽만 남은 발을 씻을 때에는 씻기지 않는 그늘이 묻어 있었다. 이런 처지도 모르고 주위 분들은 동생이 사준 최고급 구두를 매일 신고 다니는 행복한 신사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에 부산의 큰 병원에 잠시 입원을 하셨다. 당신이 먼저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예견하셨던지 시골집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갈치시장에 한 번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집의 큰 형님은 추측으로 생선회가 잡숫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자갈치시장에서 생선회를 대접하였으나, 정작 당신은 시장 주변에 촘촘히 들어서 있는 구둣가게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구두 한 켤레를 골라잡으셨다.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새 구두가 신고 싶었고 자식들은 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검은 구두를 보면서 까마귀보다 못한 자식 된 도리를 부끄러워했다.

  한겨울 찬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리던 날, 내가 아버지의 편찮으신 몸을 부축하여 택시로 시골까지 모셔 가는 중에 신고 있는 새로 산 구두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고뇌에 찬 모습으로 무엇을 그리 생각하시는지 알지 못할 심연에 오롯이 갇힌 채 마른 낙엽처럼 굽어져 겸연스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어머니의 간호를 받으시며 새로 산 신발을 신어보지도 못한 채 한 달을 누워만 계시다 고이 눈을 감으셨다. 이제는 다정히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한 후에는 고흐의 구두 한 켤레와는 사뭇 다른 깨끗한 새 구두 한 켤레만 외로이 남았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에게 선택되어 소임을 다하지 못해 더 슬퍼 보이는 구두, 그 좋아하던 단골 술집 이남댁 가는 길도 익히지 못한 구두, 아버지의 삶을 기록할 수 없었던 새 구두는 아버지의 몸무게나 제대로 읽었을까? 탈상하는 날 구두를 불태우며 처음으로 당신의 발에 맞는 새 구두를 신고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고흐의 구두는 그림 속에서 말을 하고, 아버지의 새 구두는 나의 그리움 속에서 말을 한다.

/ 2021.10.26 옮겨 적음

https://youtu.be/vwWOhlcFeos

https://youtu.be/SLgf_jAZaq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