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쟁이의 추억 / 김영곤
이제는 아득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여간 장난이 심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워낙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장난꾸러기한테 입힐 만한 반반한 옷도 없었겠지만, 아침에 멀쩡한 옷을 입고 나가도 저녁에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바짓가랑이가 찢어지고 단추는 뜯어져서 헐렁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일 분이 아까울세라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편을 짜고는 밀고 당기며 죽어라 하고 힘을 쓰다가 종소리가 나면 교실에 들어와 숨이 차서 한참을 허덕여야 했다.
그 당시가 전쟁 직후라서 그랬던가. 사내아이들의 놀이는 상당히 거칠었다. 운동장에다 석필로 길고 꾸불꾸불한 놀이판을 그려 놓고 한쪽은 방어진을 치고 한쪽은 공격을 하는 놀이를 즐겨 했는데, 서로 맞붙을 때는 전쟁이 따로 없었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개구쟁이들은 온몸이 땀과 먼지에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교실에 들어가서는 선생님한테 너무 심하게 놀이를 한다고 꾸중을 듣곤 했다.
우리는 방과 후에도 그런 놀이를 계속하곤 했는데, 정신없이 몇 시간을 놀고 난 후에는 운동장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가방을 찾느라고 또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러노라면 책가방 무더기에서 한꺼번에 서로 자기 것을 찾느라 가방 속에 든 책들이 쏟아지고, 빈 도시락 뚜껑이 열리는 등 한바탕 소동이 나는 것이었다.
한번은 같은 학교에 다니던 내 여동생이 해 질 무렵이 되도록 그 야단을 벌이고 있는 나를 지켜보다가, 혹시 가방을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땅바닥에 던져 놓은 내 가방을 가지고 집에 가 버렸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한참이나 찾았다. 그런 일로 미루어 보아 그 시절 내가 얼마나 개구쟁이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요즈음 아이들은 과외 공부를 하느라고 신나게 놀 시간이 없는 것 같다. 혹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느라고 옛날처럼 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그런 놀이는 다치기도 쉽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힘을 겨루다 보면 싸움이 되기도 쉬우니 권할 만한 놀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놀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실탄을 주워 와서 땅바닥에 거꾸로 꽂아 놓고 못으로 타격을 가해 폭발시키는 위험한 일도 예사로 했다. 또 화약을 꺼내 땅바닥에 일렬로 연결해 놓고 한쪽 끝에다 불을 붙인 다음 그것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침을 삼키며 구경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재밋거리를 찾으며 자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평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온갖 꿈을 꾸었고, 서로 두터운 정을 나누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의 일로 가끔 추억에 젖게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어느 날 늦도록 운동장에서 뒹굴다가 집에 돌아와 책가방을 열어 보니, 국어 교과서 한 권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다음 날 교실이고 운동장이고 두루 찾아보았지만 잃어버린 국어 교과서를 찾을 수 없었다.
책을 잃어버린 것이 확실해지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쓰는 교과서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고 그 다음 날 저녁, 국어 교과서 전체를 베끼기로 작정하셨다.
지금 같으면 복사기로 쉽게 복사했겠지만 그때는 복사기라곤 생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국어 교과서를 손으로 직접 한 자 한 자 베끼시기 시작하셨다.
철없는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한밤중에 깨어났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주무시지 못하고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번갈아 가며 만년필로 책을 베끼고 계셨다. 잉크가 떨어지면 다시 만년필의 고무주머니에 잉크를 채워 가며 계속해서 책을 베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과서와 같은 쪽에 같은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또 내가 잘 읽을 수 있도록 글자도 또박또박 써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가 먼저 반을 베끼시고 그 다음은 아버지가 하셨는데,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겨우 그 일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재봉실로 그런대로 제본도 한 누런 종이의 ‘국어 교과서’를 가지고 학교에 갔다. 마침 국어 시간이 되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모양도 이상하고 여기저기 번진 잉크 자국이 있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다른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어느새 내 주위에 앉은 친구들이 내가 이상한 교과서를 들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친구는 자기 것하고 바꿔 보자며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잘되었다 싶어 얼른 그 친구와 교과서를 바꿨다.
내 책을 받아 간 친구는 책장을 앞뒤로 뒤적여 보면서 참 신기해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너도 나도 보자고 해서 서로 돌려 보다가 결국 선생님한테 들키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가 우물거리면서 그 사연을 설명하자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미소만 지으셨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손을 베껴 쓴 그 교과서를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주신 그 교과서를 왜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들고 자랑하지 못했는가 하고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그 일을 회상할 때마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두 분이 밤을 새워 가며 교과서를 베끼시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젖게 되는 것이다.
/ 2021.10.26(화)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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