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약밥' 신라시대 임금님 구한 까마귀 은혜에 보답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75. 약밥 藥食
물에 불린 찹쌀을 시루에 찐 뒤, 꿀 혹은 흑설탕, 참기름, 대추, 진간장, 밤 등을 섞어 다시 시루에 담아 쪄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은 주로 정월 대보름이나 혼인 또는 환갑잔치 등 큰 일이 있을 때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 모든 곡식이 그해에 풍년들기를 염원하면서 찹쌀, 찰수수, 차조, 팥, 콩 등 다섯 가지 잡곡을 섞어 지은 오곡밥(일명 잡곡밥)을 지어 먹는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이 오곡밥은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백 집이 나누어 먹어야 좋다.’는 뜻을 지닌 ‘백가반百家飯’이라는 이름도 전한다.
이처럼 오곡밥이 서민들의 절식節食이라면 약식은 다소 사치스러운 고급 음식인 셈이다. 그 유래는 멀리 신라시대 ‘사금갑射琴匣’ 설화에서 유래된다.
『삼국유사』「제십팔대 실성왕 사금갑」조에 보면 21대 비처왕 즉위 10년(488) 정월 보름날 왕이 천천정이라는 곳에 거동을 하였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울면서 지금 역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왕은 곧바로 대궐로 돌아가 역적들을 소탕함으로써 화를 면했다. 그 뒤 왕은 대보름날을 ‘오기일’로 정하고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오기일에 까마귀의 털 색깔과 비슷한 약식을 만들어 바침으로써 까마귀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것이다.
이 약밥 풍속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밤과 잣 등 여러 가지의 견과류와 꿀을 첨가하여 대보름의 절식節食으로 즐겨 먹게 되었다.
약식의 색깔은 까마귀의 몸 색깔과 비슷하다. 이러한 색깔을 맞추기 위하여 약식에는 여러 가지 곡식이 첨가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발간된 『규합총서』에 보면 ‘약식은 찹쌀에 대추, 밤, 잣, 참기름, 꿀, 진간장을 버무려 짜낸 찰밥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꿀은 약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추측컨대 재료에 꿀이 들어갔기 때문에 ‘까마귀밥’이 아닌 ‘약밥ㆍ약식’이라고 불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약식은 뒤에 정월 보름뿐 아니라 돌이나 생일 등 큰 잔치에는 대체로 오르는 소중한 음식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글=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출처: 중도일보)
/ 2021.10.2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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