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노트]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자

[우리말] '백수'는 흰손? 백수건달의 준말 (2021.10.23)

푸레택 2021. 10. 23. 11:13

[우리말] 백수는 흰손? 백수건달의 준말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41. 백수 白手


백수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준말로 ‘아무 것도 없는 멀쩡한 건달’을 일컫는다.

이 말은 1920년대 우리나라에 퇴폐주의 사조가 유행하면서 생긴 것인데 처음에는 창백한 얼굴에 흰 손을 가진 무기력한 지식인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입으로는 민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그와 동떨어지게 나약한 삶을 사는 이른바 인텔리들을 가리킨 데서 이 백수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머리속에는 상당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으면서도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이 다방 저 다방을 순례하면서 고담준론을 일삼으며 무위도식하는 군상들인데 그 얼굴이나 손이 희었기 때문에 백수白手라고 했다.

이 흰 손白手에서 시작된 말이 다음으로 맨손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이 말이 처음으로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팔봉 김기진의 「백수의 탄식」이라는 시에서부터이었는데 거기서 팔봉은 ‘너희들의 손은 너무나 희구나!’라고 백수를 탄식했다. 그 뒤에 1930년대 정지용은 그의 대표 시 중의 하나인 「카페 프랑스」에서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무 것도 아니란다 /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라고 읊고 있다.

이렇게 쓰여지기 시작한 백수가 이제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며칠씩 감지 않은 머리와 추리닝 복장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만화방에 모여들던 현실도피형이 70년대의백수의 모습이었다면 IMF를 겪은 이후에는 직장을 잡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놀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에 있는 실업자들을 가리켜 백수라고 하는가 하면 공무원으로 퇴직하여 연금을 타며 여생을 즐기는 노인을 화려한 백수, 이를 줄여서 ‘화백’이라 이르니 백수는 직장을 갖지 못하고 노는 실업자를 총칭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사오정’, ‘이태백’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조기 퇴직자를 백수로 지칭하기도 한다.

글=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출처: 중도일보)

/ 2021.10.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