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두 소년' 문태준, '오누이' 김사인, '계란만한 병아리들' 고형렬, '어떤 평화' 정현종 (2021.10.22)

푸레택 2021. 10. 22. 12:34

◇ 두 소년 / 문태준

굵은 눈이 막 올 때는
두 소년이 생각난다

어느 해 어느 날인지는 가마득해 잊었지만
땔감을 사러 보육원에서 트럭이 온 날이었다

산 밑 우리 집에 따라와
땔나무를 싣던 두 소년

트럭 짐칸에 타고
굵은 눈 속으로 멀어져간
두 소년은 나와 또래라 했다

- 문태준,『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2015)

◇ 오누이 /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 계란만한 병아리들 / 고형렬

​꽃샘바람 불면서
올해는 화곡초등학교 앞에 나타났다.

삐악삐악. 사과상자에서 울고 있는 노란 병아리들. 교문을 뛰쳐나온 아이들이 에워싼다. 아들 친구들은 앞다투어 "자요, 500원" "여기요, 500원" 날아갈 것 같은, 산수유꽃 병아리를 들고 사라진다. 생명 하나 값 500원. 500원 생명에 아이들은 이렇게 봄마다 속는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연기 같은 저 병아리를 어찌 사지 않으랴.

- 고형렬,『김포 운호가든집에서』(창작과비평사, 2001)

◇ 어떤 평화 / 정현종

오후의 산촌.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 하나가 앉아서 소가 풀 먹고 새김질하는 걸 바라보고 있다. 가까이 가는 사람도 못 느끼고 정신없이 보고 있다.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쳐다보며 얼른 "어디 살아요?" 하고 묻는다. "나는 서울 사는데 너는 여기 사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천하를 안심하고 다시 소한테로 눈길을 돌린다. 소 주려고 우리 바깥에 있는 짚을 한 움큼 집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얼굴로 "그거 잘 먹어요" 한다. 그 목소리 속에는 친근감과 기쁨이 들어 있다(자기가 하는 짓을 낯선 사람도 하는 데서 느끼는 친근이요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내 마음에 또렷한 그 '풀 먹고 있는 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나는 가끔 바라본다. 잊히지 않는 그림. 지지 않는 꽃. 평화여.

-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2018)

[출처] 《주제 시 모음》 작성자 느티나무

/ 2021.10.22 옮겨 적음

https://blog.naver.com/edusang

 

브랜드 있는 선생님 : 네이버 블로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매일 답을 하고 있는 중이다.

blog.naver.com

https://youtu.be/tKrGbvhX6Qw

https://youtu.be/p06xY9wawMk

https://youtu.be/VF9XuFE1XtM

https://youtu.be/KWnXFKe6T_Y

https://youtu.be/VLDThq-E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