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엄마 걱정' 기형도, '어머니' 곽재구,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2021.10.18)

푸레택 2021. 10. 18. 18:37

◇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가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 어머니 / 곽재구

풋콩 두 되
고사리 한 이엉
토란 몇 됫박을 내다팔아도
자식놈 월사금은 거리가 멀어
저문 갈퀴날 비수 되어
창포물 먹인 봄햇살을
싹둑 자르셨네
잘난 자식 둔 죄로
약 한 첩 못 끓이고
서천 거지별로 떠돌더니
잘난 자식놈은
장안 제일 허름한 골목의
어둠에도 당황하는
팔푼 쇠비름풀이나 되었네.

​ - 곽재구, 『沙評驛에서』 (창작과비평사, 1983)

◇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비평사, 1997)

[출처] 《주제 시 모음》 작성자 느티나무

/ 2021.10.1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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