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령 노을 / 이성선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 이성선,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2000)
◇ 저녁노을 속에 서면 / 문인수
저녁노을 속에 서면 머리카락이 탄다
타관에서 오래 나이만 먹었나니
검불 타는 냄새가 난다
까까머리 까까머리
해만 지면 자꾸 불러들이던 어머니
저녁연기 풀어올리던 굴뚝 생각이 난다
- 문인수,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학아카데미, 1990)
◇ 서해 낙조 / 김완하
그대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오가는 길과 길 사이로
초록빛 그리움 안고 달리면
내 안으로 나무 하나 깊이 들어선다
계절마다 하늘 바꿔 이는 저 느티나무도
한 생을 이렇듯 푸르게 드리우지 않는가
참매미 쓰르라미 숨찬 울음소리에
산과 강 뜨겁게 열리고
불볕 속에서도 길은 서해로 달린다
십리포, 만리포에 이르러
제 가슴 한쪽을 여는 바다
짙은 쪽빛 껴안고 섬 하나 키운다
파도는 몇 번의 물때를 바꾸며
생의 바튼 숨길 씻어 내린다
파도소리에 귀먹은 모감주나무
수천 번 푸르름 길어 올리고서야
제 가슴에 능소화 몇 송이 붉게,
붉게 꽃잎 틔운다
서해, 하루는 붉게 달아올라
큰 바다 비로소 받아 안는 해의 몸
길에서 바다로, 다시 파도 속으로
너에게로 오롯이 이어져
가슴속에 등불 하나 살아 오른다
- 김완하, 『허공이 키우는 나무』 (천년의시작, 2007)
[출처] 《주제 시 모음》 작성자 느티나무
/ 2021.10.18 옮겨 적음
https://blog.naver.com/edu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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