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작수필] '권태(倦怠)' 이상(李箱) (2021.10.18)

푸레택 2021. 10. 18. 10:38

[사진출처] 《한국소설문학대계》 (동아출판사, 1995)

◇ 권태(倦怠) / 이상(李箱)



어서ㅡ 차라리ㅡ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僻村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東에 팔봉산八峯山,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고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ㅡ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農家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 넝쿨, 모두가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백도百度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염서炎署의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白紙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記事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ㅡ 나는 최 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 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 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최 서방의 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 내가 아침 먹은 것은 열시나 지난 후니까,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임에 틀림없다.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 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리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倦怠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ㅡ 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 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어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한 번쯤 져 주리라. 나는 한참을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그머니 위험한 자리에 장기 조각을 갖다 놓는다. 최 서방의 조카는 하품을 쓱 한 번 하더니, 이윽고 둔다는 것이 딴전이다.

으레 질 것이니까, 골치 아프게 수를 보고 어쩌고 하기도 싫다는 사상思想이리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장기를 갖다 놓고는, 그저 얼른얼른 끝을 내어 져 줄 만큼 져 주면, 이 상승장군常勝將軍은 이 압도적인 권태를 이기지 못해 제 출물에 가버리겠지 하는 사상이리라. 가고 나면 또 낮잠이나 잘 작정이리라.

나는 부득이 또 이긴다. 인제 그만 두잔다. 물론,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일부러 져 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 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상태가 되어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자세한 승부勝負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이욕人間利慾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虛脫해 버려야 한다.




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덥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덥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ㅡ 무슨 제목題目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예曲藝의 역域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 본다.


지구 표면적表面積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恐怖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무미한 채색彩色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沒趣味와 신경의 조잡성粗雜性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餘白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온종일 저 푸른 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白痴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윽고 밤이 오면, 또 거대巨大한 구렁이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도 없이 잔다. 이 무슨 거대한 겸손謙遜이냐? 이윽고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失色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루襤褸를 갈기갈기 찢은 것과 다름없는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것이다.

한 겨울을 두고 이 황막荒漠하고 추악한 벌판을 바라보고 지내면서, 그래도 자살自殺 민절悶絶하지 않는 농민農民들은 불쌍하기도 하려니와 거대한 천치다.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塗布된 것이리라. 일할 때에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울 황원荒原처럼 거칠고 구지레하게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벌판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은 뇌성雷聲 끝에 가끔 있는 다반사茶飯事에 지나지 않는다. 촌동村童이 범에 물려가도, 그것은 맹수猛獸가 사는 산촌에 가끔 있는 신벌神罰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전신주電信柱 하나 없는 벌판에서 그들이 무엇을 대상으로 흥분할 수 있으랴?


팔봉산 등을 넘어 철골전신주鐵骨電線柱가 늘어섰다. 그러나 이 동선銅線은 이 촌락에 엽서 한 장을 내려뜨리지 않고 섰는 채다. 동선으로는 전류도 통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방이 아직도 송명松明으로 어둠침침한 이상, 그 전선주들은 이 마을 동구洞口에 늘어선 포플라 나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電光과 같이 그들의 흉리胸裏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奴役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댑싸리나무도 축 늘어졌다. 물은 흐르면서 가끔 웅덩이를 만나면 썩는다. 내가 앉아 있는 데는 그런 웅덩이가 있다. 내 앞에서 물은 조용히 썩는다. 낮닭 우는 소리가 무던히 한가롭다. 어제도 울던 낮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 아무 흥미도 없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다만, 우연히 귀에 들어왔으니까, 그저 들었달 뿐이다.

닭은 그래도 새벽낮으로 울기나 한다. 그러나 이 동리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다. 그러면 모두 벙어리 개들인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이 동리 사람 아닌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서 위협하면, 십리나 달아나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짖는다. 그렇건만 내가 아무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천리나 먼 데서 온 외인外人, 더구나 안면이 이처럼 창백하고 봉발蓬髮이 작소鵲巢를 이룬 기이奇異한 풍모를 쳐다보면서 짖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여기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를 않을까? 세상에도 희귀한 겸손한 겁쟁이 개들도 다 많다. 이 겁쟁이 개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그럼 대체 무엇을 보아야 짖으랴?

그들은 짖을 일이 없다. 여인旅人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도國道 연변에 있지 않은 이 촌락을 그들은 지나갈 일도 없다. 가끔 이웃 마을의 김 서방이 온다. 그러나 그는 여기 최 서방과 똑 같은 복장과 피부색과 사투리를 가졌으니, 개들이 짖어 무엇하랴? 이 빈촌貧村에는 도적이 없다. 인정 있는 도적이면 여기 너무나 빈한한 새악시들을 위하여, 훔친 바 비녀나 반지를 가만히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도적에게는 이 마을은 도적의 도심盜心을 도적맞기 쉬운 위험한 지대地帶리라.

그러니 실로 개들이 무엇을 보고 짖으랴. 개들은 너무나 오랜 동안ㅡ 아마 그 출생 당시부터ㅡ 짖는 버릇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은 이곳 견족犬族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인제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겨우 짖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으니, 특히 개의 특징으로 쳐들 것은 못 되리라.

개들은 대개 제가 길리우고 있는 집 문간에 앉아서 밤이면 밤잠, 낮이면 낮잠을 잔다. 왜? 그들은 수위守衛할 아무 대상도 없으니까다. 최 서방네 집 개가 이리로 온다. 그것을 김 서방네 집 개가 발견하고, 일어나서 영접한다. 그러나 영접해 본댔자 할 일이 없다. 양구良久에 그들은 헤어진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 본다. 밤낮 다니던 길, 그 길에는 아무 것도 떨어진 것이 없다. 촌민村民들은 한여름 보리와 조를 먹는다. 반찬은 날된장 풋고추다. 그러니 그들의 부엌에조차 남는 것이 없겠거늘, 하물며 길가에 무엇이 족히 떨어져 있을 수 있으랴? 길을 걸어본댔자 소득이 없다.

낮잠이나 자자. 그리하여 개들은 천부天賦의 수위술守衛術을 망각하고 낮잠에 탐닉耽溺하여버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개, 지킬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 개, 이 바보 개들은 복날 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犧牲이 된다. 그러나 불상한 개들은 음력을 모르니, 복날은 몇 날이나 남았나 전혀 알 길이 없다.



아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자동차乘合自動車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답답한 풍속 가운데서 나는 이리 뒤굴 저리 뒤굴 굴고 싶을 만치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掩襲하였을 때, 그의 동공瞳孔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自意識 과잉過剩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전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絶頂을 표시한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에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가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이렇게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躊躇한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 뜬 채 졸기로 하자.


더워 죽겠는데 목욕이나 할까? 그러나 웅덩이 물은 썩었다. 썩지 않은 물을 찾아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ㅡ 썩지 않은 물은 여기 있다기로소니, 나는 목욕하지 않았으리라. 옷을 벗기가 귀찮다. 아니, 그보다도 그 창백하고 앙상한 수구瘦軀를 백일白日 아래 널어 말리는 파렴치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땀이 옷에 배면, 밴 채로 두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더위는 무슨 더위냐?
나는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세수를 하기로 한다. 나는 일어서서 오던 길을 돌치는 도중에서 교미交尾하는 개 한 쌍을 만났다. 그러나 인공人工의 기교가 없는 축류畜類의 교미는, 풍경이 권태 그것인 것같이 권태 그것이다. 동리 동해童孩들에게도 젊은 촌부村婦들에게도 흥미 이상의 대상이 못 되는 이 개들의 교미는, 또한 내게 있어서도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함석 대야는 그 본연의 빛을 일찍이 잃어버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같이 붉고 검다. 아마 이 집 주인 아주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리라. 세수를 해본다. 물조차 미지근하다. 물조차가 이 무지한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러나 세수의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다. 그리고 호박넝쿨이 축 늘어진 울타리 밑 호박 넝쿨의 뿌리 돋힌 데를 찾아서 그 물을 준다. 너라도 좀 생기生氣를 내라고.

땀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툇마루에 걸터앉았자니까, 내가 세수할 때, 내 곁에 늘어섰던 주인집 아이들 넷이, 제각기 나를 본받아, 그 대야를 사용하여 세수를 한다. 저 애들도 더워서 저러는구나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 그 애들도 나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어찌하였으면 좋을까 당황해 하고 있는 권태들이었다. 다만 내가 세수하는 것을 보고, 그럼 우리도 저 사람처럼 세수나 해볼까 하고, 따라서 세수를 해보았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이 내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村童들을 원숭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 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대싸리 외外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거기 앉아서, 이 번에는 그 썩는 중中의 웅덩이 속을 들여다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目睹한다. 무수한 오점汚點이 방향을 정돈해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生物임에 틀림없다. 송사리 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沼澤 속에 이런 앙징스러운 어족魚族이 서식棲息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버러지를 먹겠지. 그러나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버러지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를 가만있지 않는다. 저물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動機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下流를 향하여 군중적群衆的으로 이동한다. 저렇게 하류로 하류로만 가다가 또 어쩔 작정인가? 아니 그들은 중로中路에서 또 상류를 향하여 거슬러 올라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5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치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덩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덩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 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다. 그 웅덩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ㅡ 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러나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 잊어버리고 그만 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뿐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표지標識다. 야우시대野牛時代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습니다.ㅡ 하는, 마치 폐병廢兵의 가슴에 달린 훈장勳章처럼 그 추억성追憶性이 애상적哀傷的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한층 더 겸허하다. 그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 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우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反芻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病人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審理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기에 이미 위胃에 들어간 식물食物을 다시 게워, 그 시큼털털한 반소화물半消化物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하는 체해 보임이리요?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細菌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謙遜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길 복판에서 6, 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赤髮銅膚의 반라군半裸群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 6세 내지 7, 8세의 ‘아이들’임에는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遊戱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온다. 여기는 사금파리도 벽돌 조각도 없다. 이 빠진 그릇을 여기 사람들은 버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풀을 뜯어온다. 풀ㅡ 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禁制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 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한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본다. 10분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동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 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아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히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悲鳴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는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장난감 하나가 없는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짓도 5분이다. 그 이상 더 길게 이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ㅡ 이 권태의 왜소矮小 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견했나?

5분 후에 그들은 지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각기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놓았다. 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러나 그 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ㅡ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風景과 완구玩具를 주소서.




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부패작용自己腐敗作用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 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臟腑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 떼가 준동蠢動하고 있나 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慣性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天文學의 대상對象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香氣도 촉감도 없는 절대絶對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을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煙氣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消化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ㅡ 나는 이런 실례失禮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絶緣된 지금의 내 생활ㅡ 자살의 단서端緖조차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極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凶猛한 형리刑吏처럼ㅡ 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러한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ㅡ 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 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ㅡ 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ㅡ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懶怠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火傷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ㅡ 평상平床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以上,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宇宙에 꽉 찬 것이나 분량 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大小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글=이상(李箱) 시인·소설가

△ 이상(李箱, 1910년~1937년)

본관 강릉(江陵)
본명(本名) 김해경(金海卿), 초기 필명은 김비구(金比久)

강원도 강릉 신명보통학교 졸업, 경성 동광고등보통학교,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대표작 12월 12일, 이상한 가역반응, 공복, 조선과 건축, 꽃나무, 거울, 지팽이 역사, 오감도, 날개

[출처] 다음백과 / 2021.10.18 옮겨 적음


이상(李箱, 1910-1937), 본명 김해경(金海卿)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학국의 시인, 소설가, 수필가이자 건축가이다.

유년시절 이상은 화가를 지망하였지만 백부가 세태가 바뀌어도 기술자는 배를 곯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환쟁이는 안 된다고 반대해서 결국 백부의 바람대로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가 되었다.

이상이라는 필명은 총독부 건축 기사로 일하던 당시 한 인부가 김해경을 긴상(김씨)라고 불러야 할 것을 김 씨와 이 씨를 헷갈려 실수로 이상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보성(普成)고보 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 구본웅이 선물로 준 오얏나무로 만들어진 화구상자를 받고 친구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정하게 되었다는 설도 나와 있다. 전자는 이상의 여동생과, 아내였던 변동림이 했던 증언이지만 후자는 보성고보 시절 직접 디자인한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고 설명한 것이 발견되어 보다 설득력이 높다.

1932년 새로 부임한 일본인 상사와의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던 이상은 1933년 심한 각혈 증세를 겪고,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는다. 폐결핵을 진단받은 이상은 곧바로 건축 기사일을 그만 두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이상은 요양차 갔던 온천에서 기생 금홍과 알게 된다. 이상은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차리고 금홍과 동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방은 잘 되지 않았고 심심해진 금홍은 외박을 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결국 금홍은 몇 번의 가출 끝에 이상의 집을 완전히 나가버리고 다방 제비는 폐업한다.

제비가 폐업한 이후 이상은 다방 제비에 드나들던 문학가들의 추천으로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명사들과 교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소설가 김유정과 친하게 지냈다고 하여, 심지어는 동반자살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김유정의 거절로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다방 제비가 망한 후에도 인사동에 카페 , 종로1가에 다방 69를 차례로 개업했으나 모두 대차게 말아먹게 된다. 경영에 있어서는 천재가 아니었던 듯.

1936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변동림과 결혼한 이상은 서구화된 문물에 익숙해지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1937년 어느 날, 무작정 도쿄로 여행을 떠났으나, 이내 도쿄에 실망하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도쿄에 도착한 후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새 출발의 발판 기점으로 삼으려고 했던 도쿄에 대한 환멸감을 느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 이상은 조선에 다른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적힌 편지를 보낸 후 햇빛도 들지 않는 싸구려 방을 얻어서 홀로 은거해 버린다. 그 직후 도쿄에서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도쿄 경찰서에 구금되었지만 심한 병(폐병) 때문에 병보석으로 석방이 되었고,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이상의 부고를 듣고 급히 도쿄로 온 변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돌보는 이가 없다가 6.25 전쟁 후 미아리 공동묘지가 사라지며 유실되었다.

그의 임종시 유언은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후일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이 멜론이 먹고 싶다였다고 술회하였다.

그 당시 화가 구본웅과 같이 다니는 것을 그린 만평에서는 옷 잘입는 멋쟁이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됐다. 지금봐도 옷 맵시나 헤어스타일이 꽤 멋있는 편이다.

당대에 활동하던 문인들과 같이 찍은 사진 속 모습의 이상은 멋을 한껏 부릴 것 같은 이미지와 다르게 몸치장과 패션에 무심하였고, 그냥 눈에 보이는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외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계절에 상관없이 흰 구두를 신고 다녔으며, 당시 여러 사진에도 나오는 듯한 강한 색상의 보헤미안 넥타이는 그의 분신과 같았다.

당시 이상을 담당했던 일본인 의사의 말에 의하면, 어쩌면 젊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되도록 버려 두었을까? 폐가 형체도 없으니... 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참고로 이상은 엄청난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를 50개피 피는 것을 자신의 일과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 2021.10.1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