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사나무
/ 서울식물원 초지원에서 촬영 2021.10.10
■ 산사나무 (Hawthorn , 山査木, 아가위나무, 찔구배나무)
분류 장미과
학명 Crataegus pinnatifida
5월의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날, 청초한 초록 잎 사이로 하얀 꽃구름을 피워 청춘을 유혹하는 나무가 있다. 햇빛을 워낙 좋아하여 야산의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의 양지바른 곳에서 고운 자태를 비로소 볼 수 있다. 우리 이름은 산사나무, 영어 이름은 ‘오월의 꽃’이다.
산사나무 무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광나무와 이노리나무를 포함하여 세 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1천여 종이 있는 대식구다. 대체로 더운 지방보다는 북반구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자란다.
동양의 산사나무는 주로 약재로 쓰는 나무일 뿐이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전설을 가진 민속나무로 알려져 있다. 고대 희랍에서의 산사나무는 희망의 상징으로서 봄의 여신에게, 로마 사람들은 꽃의 여신에게 바쳤다. 지금도 5월 1일이면 산사나무 꽃다발을 만들어 문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영국에도 산사나무에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 있으며, 5월이 되면 태양숭배를 상징하는 축제를 열고 하루 종일 야외에서 춤을 추면서 보낸다고 한다. 이때쯤 활짝 피는 산사나무 꽃은 5월의 상징이었다.
1890년 근대 노동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노동절 행사가 5월 1일로 정해지자 산사나무 꽃은 자연스레 신성한 노동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 이름은 ‘메이플라워’, 즉 오월의 꽃이다. 산사나무 꽃은 행복의 상징이었으며, 아테네의 여인들은 결혼식 날 머리를 장식하는 데 이용했다. 로마에서는 산사나무 가지가 마귀를 쫓아낸다고 생각하여 아기 요람에 얹어두기도 했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동양 사람들은 열매의 약리작용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중국과 일본 및 우리나라에서는 산사나무 열매를 ‘산사자(山査子)’라 하여 감기 기침은 물론 소화불량을 치료하는 약으로 널리 쓰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산림경제(山林經濟)》주 〈치약(治藥)〉 편에 보면 “산속 곳곳에서 나는데 반쯤 익어 맛이 시고 떫은 것을 채취하여 약에 쓴다. 오래 묵은 것이 좋으며 물에 씻어 연하게 쪄서 씨를 제거하고 볕에 말린다”라고 나와 있다.
꽃이 지고 곧바로 열리기 시작하는 열매는 뜨거운 여름 태양에 달궈져 8월이면 벌써 푸른 잎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지나온 꽃 세월이 아쉬운 듯, 껍질에는 작디작은 하얀 반점이 박혀 있다. 구슬만 한 크기에 전체 모습은 귀여운 아기사과와 영락없이 닮았다. 핏줄을 속일 수는 없는 듯, 산사나무는 장미과 중 배나무아과(亞科)라 하여 사과나무와 한 족보를 이루기 때문이다. 열매를 씹어 보면 역시 사과처럼 새콤하고 달큼한 맛이 난다.
열매는 약재 말고도 쓰임이 많다. 《계산기정(薊山紀程)》주에는 “산사는 크기가 밤알만 하고, 살이 많고 맛이 좋으며, 보드라운 가루로 만들어 꿀에 타 떡을 만든다”라고 나와 있다. 또한 산사 떡이나 산사정과(正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원을 알 수는 없으나 옛 이름은 아가위나무다.
산사나무는 전국에 걸쳐 자라는 갈잎나무로 키 4~5미터에 지름은 한 뼘 정도로 흔히 만날 수 있는 크기다. 그러나 최근 천연기념물 506호로 지정된 서울 영휘원의 산사나무는 줄기둘레가 한 아름이 훨씬 넘는 203센티미터에 키가 9미터에 이른다.
산사나무 특징 중에 독특한 잎사귀 모양을 빠뜨릴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나뭇잎은 긴 타원형에 가장자리는 얕은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그러나 산사나무 잎은 평범함을 거부한다. 잎이 불규칙하고 깊게, 때로는 거의 가운데 잎맥까지 패어 있다. 우리나라 나무 중에는 이런 특별한 잎이 없기 때문에 한번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글=박상진 경북대 교수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 2021.10.1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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