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시 읽어주는 남자] '동백이 활짝' 송찬호 (2021.10.06)

푸레택 2021. 10. 6. 10:18

■ 동백이 활짝 / 송찬호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사, 2000)

[감상]

사자와 동백꽃… 일상에 생명력 불어넣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열에 아홉은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유는 먹고 사는 일에 쫓겨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 끝에 “너는 시를 쓰니까 우리보단 사는 게 재미있지?”라고 묻는다. 나라고 다를 게 있냐며 대답의 끝을 얼버무려보지만 선뜻 믿으려하지 않는다. 

언젠가 고용노동부에서 직업별 연봉순위를 발표한 자료를 본적이 있었는데, 시인은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1,000위까지 발표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먹고 사는 현실의 논리에 입각한다면 시인들의 삶은 재미없다는 수준을 떠나 지옥의 끝을 알몸으로 헤매고 있는 지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열심히’ 시를 쓴다. 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랭보(Jean-Arthur Rimbaud)는 시인을 견자(見者, voyant)로 지칭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투시할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진 자가 바로 시인이다. 그래서 그는 “시인은 모든 감각 기관에 걸친 광대무변하면서도 이치에 맞는 착란에 의해 견자가 된다.”고 말한다. ‘광대무변하면서도 이치에 맞는 착란’이란 상상력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상상력의 빈곤이 우리의 삶을 재미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송찬호의 〈동백이 활짝〉을 처음 읽었을 때 활달한 상상력의 기개에 놀라 잠시 움찔했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꽃을 활짝 피웠다.”는 표현은 내가 경험했던 동백꽃 풍경의 전부를 일시에 뒤집어버리는 일대 사건으로 다가온다. ‘사자’와 ‘동백꽃’의 예기치 못한 결합이 주는 놀라움의 세계, 그것이 상상력의 위력일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동백꽃의 모습을 ‘네 발’로 허공을 향해 솟구쳐 마침내 ‘붉은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의 움직임으로 표현했을 때 동백꽃 숲속은 자연의 공간에서 비약해 정신의 세계로 불쑥 진입한다. 랭보의 말처럼, 광대무변하면서도 이치에 맞는 착란에 의해 동백꽃 숲속은 사자의 우렁찬 포효소리가 만개한 감각의 특별한 장소가 된다. “바람이 동백꽃을 베어물고/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즉 땅을 박차고 솟구쳤던 사자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그 벅찬 감회의 순간을 하나의 ‘문장’으로 포착하려는 시인에게서 나는 견자의 모습을 본다.

동백꽃 속에 숨어있던 사자를 불러내는 송찬호 시인의 상상력은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사는 우리의 빈곤한 정신에 거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삶 속에도 ‘붉은 갈기’의 사자 한 마리쯤은 살고 있을 것이다. 이성(理性)의 감옥에 갇힌 그 놈을 상상력의 열쇠로 풀어줄 시간이 되었다. 저 남쪽 마을 끝자락에서부터 동백꽃 핀다는 소식이 물씬 몰려온다.

글=신종호 시인

/ 2021.10.06 옮겨 적음

https://blog.naver.com/edusang

 

브랜드 있는 선생님 : 네이버 블로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매일 답을 하고 있는 중이다.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