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자리의 한살이 / 권오길 강원대 명예 교수
잠자리, 너의 한살이도 그리 간단치가 않구나. 잠자리를 청령(청령)이라 부르며 영어로는 'dragonfly'인데 우리말로 풀어 보면 우습게도 '용파리'가 되며, 잠자리유충이 용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아무튼 두 쌍의 날개는 앞뒤 같고, 곱고 투명한 것이 날개맥(시맥·翅脈)이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그래서 모시같이 얇고 고운 천을 "잠자리 날개 같다"고 한다.
잠자리는 수초의 조직이나 축축한 흙·나무토막 같은 곳에 산란하고, 2주일 후면 부화하여 유충인 '수채'가 된다. 수채를 우리말로는 '학배기'라 부르며,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1년에서 여러 해에 걸쳐 물에서 산다. 학배기는 육식을 하는지라 턱이 발달해 장구벌레나 실지렁이, 올챙이, 다른 또래들을 거리낌없이 잡아먹는다. 이 학배기가 잠자리가 되면 올챙이와의 관계는 역전된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여 거꾸로 잠자리를 잡아먹으니 하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 팔자도 모른다.
학배기는 10~15번 껍질을 벗으며, 항문과 연결된 '직장(直腸)아가미'로 숨을 쉰다. 잠자리는 나비와는 달리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물속 생활이 끝날 즈음이면 연못가 식물의 줄기를 타고 기어올라 날개돋이(우화·羽化)를 하니 애벌레의 머리, 가슴 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등짝이 Y자로 쪼개지면서 드디어 물기 촉촉한 어미 잠자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빠져나온다.
수컷은 짝짓기 할 시기가 되면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순찰을 돌면서 심한 텃세를 부린다. 잠자리 두 마리가 앞뒤로 나란히 달라붙어 날아다니는 것을 자주 볼 것이다. 이것을 흔히 '결혼비행'이라 하는데, 그것은 결코 교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짝짓기 하기 위한 전희 행위다. 앞뒤로 붙어 나는 잠자리 중에서 어느 것이 암놈이고 수놈일까. 잠자리 수컷은 배 끝에 집게가 있어서 그것으로 암컷의 목 줄기를 꽉 잡고는 하늘을 날아다니니 앞의 것이 ♂(군신의 창), 뒤의 것이 ♀(비너스의 거울)이다. 드디어 때가 되면 연못이나 웅덩이 주변의 풀밭에 자리를 잡고 짝짓기를 한다.
암놈 생식기는 10개의 배마디 중에서 아홉째 마디에 있고, 수놈의 교미기는 2개로 9절에 생식기가 있고, 그것 말고도 2~3절에 부생식기가 있다. 암컷이 몸을 뒤집어서(앞뒤 반대 방향으로) 여섯 개의 다리로 수놈의 배를 거머쥐고 자기 몸을 둥글게 구부려 생식기를 수컷 가슴팍에 있는 부생식기에 갖다 대고, 거기에 붙여 둔 정자덩어리를 받아간다. 그것이 짝짓기다. 아직도 수컷에 목이 잡혀있으니 이때의 자세가 하트 모양을 한다.
짝짓기가 끝났지만 암수가 여전히 달라붙어서 여기저기 사방 날아다니며 연못이나 웅덩이에 알을 낳는다. 왕잠자리나 실잠자리는 창포 같은 부드러운 식물의 줄기에 배 끝을 대고 이어서 알을 낳지만 그밖에 대부분의 잠자리는 물 위에다 그냥 알을 떨어뜨린다. 잠자리가 물 위에 파문을 일으키며 살랑살랑 나는 것은 알 낳을 장소를 살피는 행위다.
금년에도 '된장잠자리'가 너무 많아서 운전에 방해를 준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먹이 감이 저리도 많은데 어찌하여 내가 사는 이곳 춘천에서도 제비 한 마리 볼 수 없는 것일까.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 교수
[출처] 경향신문 2009.07.23
/ 2021.09.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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