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기를 포기한 타조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타조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새다. 비행한계선인 15㎏의 10배를 초과하는 몸무게 때문에 나는 것을 포기한 대신 단거리라면 시속 70㎞로 달릴 수 있고, 시속 30㎞로 30분 이상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졌다. 또 길고 강력한 다리에는 달릴 때 지면과 닿는 마찰력을 줄여 더 빨리 가기 위해 발가락 수도 2개로 줄었다. 덕분에 땅 위를 두 발로 걷는 동물 중에서 타조만큼 빠르게 달리는 건 없다. 위험을 느낄 때 타조가 도망치는 대신 모래 속에 머리만 감춘다는 속설은 틀린 말이다. 뇌의 크기보다 더 큰 눈으로 멀리 있는 사자도 한눈에 알아차리고는 다가올 낌새만 보여도 멀리 달아나 버린다. 도망치는 게 여의치 않은 경우라면 사자도 한방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발차기로 대항한다.
새인데도 날기를 포기한 타조에게 날개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선 타조는 달릴 때 날개를 펴서 몸의 균형을 잡는다. 특히 방향을 바꿀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날개의 가장 중요한 쓰임은 구애를 하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과시행동을 할 때 이뤄진다. 수컷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자신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과시하고 암컷에게 구애를 한다. 그러면 암컷은 머리와 날개를 낮추고 교미를 받아들이는 표시를 한다. 또 어미 날개는 어린 타조에게 뜨거운 아프리카의 태양을 피하는 시원한 그늘이 되기도 한다.
타조는 우두머리 암컷과 수컷이 쌍을 이뤄 번식한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자신의 영역 안에 땅을 얕게 파서 여러 개의 둥지를 만들고, 우두머리 암컷은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알을 낳는다. 서열이 낮은 암컷도 남은 둥지에 알을 낳는다. 그러나 그뿐 알을 품지는 않는다. 부모가 돌보지 않는 알은 독수리의 손쉬운 먹잇감이 돼서 독수리는 두께가 2㎜나 되는 타조 알을 깨먹기 위해 돌을 들어 공중에서 알둥지에 떨어뜨린다.
우두머리 둥지는 낮에는 암컷이, 밤에는 수컷이 교대로 품는다. 부모가 지키고 있어도 하이에나, 자칼로부터 무사히 알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알 중에서 10% 미만이 부화되고 그 가운데 15% 미만이 1년 이후까지 살아남을 뿐이다. 우두머리 암컷은 둥지 중앙에 자신의 알을 두고 다른 암컷의 알들까지 함께 품는다. 이것 또한 서열 낮은 암컷이 돌보지도 않을 알을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식자의 공격을 분산시켜 자신의 알이 부화될 확률을 높이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10.11.17
/ 2021.09.24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101117174908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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