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좌우상하 비대칭 '못생긴' 도다리의 사랑’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15)

푸레택 2021. 9. 15. 10:05

▎도다리는 광어와 달리 입이 작고 이빨이 없다.
▎도다리쑥국은 제철도다리에 해쑥을 넣어 끓인 생선국이다.

■ 좌우상하 비대칭 ‘못생긴’ 도다리의 사랑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수정란 단계에서 눈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유전자 가져.. 수심 100m 안팎의 모래나 개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서식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멋 떨어진 사랑의 시다! 평생을 두 마리가 붙어 다녀야만 하는 비목어를 닮고 싶다는 애절함이 스며있기에 말이다. 시의 ‘비목어’는 한자로 옮기면 ‘比目魚’로, 애꿎게도 둘 다 눈이 한 편에만 있으니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암수가 나란히 하나가 되어야 온전할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로 없인 못 사는 가련하기 짝이 없는 비목어를 찰떡금실에 빗댄다.

하지만 세상에 눈이 하나뿐인 물고기가 어디 있을라고? 이미 억센 놈한테 잡혀 먹히고 말았을 터. 물고기세상도 약육강식이 밑바닥을 깔고 있기에 말이다. 그리고 물고기 늙어 죽는 것 봤나. 힘이 쪼끔만 빠졌다 싶으면 어느새 귀신도 모르게 가차 없이 채가고 만다.

한데 비목어는 다름 아닌 가자미과에 드는 바닷물고기로 흔히 가자밋과 어류 전체를 구분하지 않고 ‘도다리’라고 한다. 횟감으로 윗자리인 도다리·가자미·서대·넙치(광어) 따위로 그지없이 납작하고, 한 쪽으로 두 눈이 비뚤게 몰렸다. 놈들은 수정란(受精卵)이 발생(난할)하면서 일찌감치 눈이 될 곳이 한녘으로 이동하는 유전자를 가졌다. ‘좌광우도’라고, 몸 왼편에 두 눈이 달라붙은 것은 광어(廣魚, 넙치)나 서대요, 오른쪽으로 치몰린 것이 도다리, 가자미다.

아무튼 두 눈이 한 방면으로 덜컥 쏠려버렸으니 한쪽 눈이 먼 애꾸눈이나 다름없다. ‘좌광’이든 ‘우도’건 결국 가깝디가깝게 자리한 두 눈이 하늘(위)을 향하는 것은 다름없다. 그래서 위쪽은 바다 밑바닥색(보호색)을 띠고, 해가 들지 않는 아랫바닥 쪽은 흰색에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좌우상하가 이렇게 다른 물고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런 비련(悲戀)은 비목어에 머물지 않는다. 더더욱 애련(哀戀)한 것에 전설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가 있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 서로 얽매여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할뿐더러 보지도 못한다. 어느 한쪽이(너) 없으면 다른 하나(나)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서로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또 산길을 가다 보면 길가에 두 나무밑둥치가 찰싹 달라붙었거나 두 나무를 나뭇가지 하나가 떡 하니 덥석 껴안고 있는 것이 있으니 연리지(連理枝)다. 나무 둘이 맞닿아서 숨결이 서로 통하고 있으니 역시 화목하고 다정한 부부애를 빗댄다. 아무튼 비목어·비익조·연리지는 하나같이 애절하고 고결한 사랑을 상징한다. 모름지기 남을 먼저 생각하고, 대면대면 살지 말며, 오롯이 아끼면서 지내라고 타이르고 있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넙치’

자, 이제 본론이다. 도다리(flatfish)는 가자밋과의 해산어로 최고로 큰 도다리는 길이 30㎝에 약 1㎏이나 나가고 바닥이 모래나 진흙으로 된 바다 밑에 사는 저서어류(底棲魚類)다. 그리고 극동아시아(북서태평양)에만 나는 터줏고기로 우리나라 남해안, 일본 남부, 중국 동해, 대만에 분포한다. 몸이 아주 납작하고, 마름모꼴에 가까우며, 불룩 튀어나온 두 눈알은 몸 오른쪽에 몰려 있고, 입은 뾰족하다. 머리 부위 말고는 몸 테두리가 온통 지느러미로 둘러싸였다. 또 아주 자잘한 비늘이 겹겹이 쌓였고, 누런 갈색 바탕에 작고 흐린 불규칙한 반점(무늬)들이 잔뜩 퍼져 있으며, 바닥 쪽 몸은 햇빛을 못 받아 희다.

다시 말하지만 광어(넙치)는 눈이 왼쪽에, 도다리는 오른쪽에 눈이 있다 하여 ‘좌광우도’라 한다고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큰 턱에 이빨이 나있으면 넙치이고, 그와 달리 입이 작고 이빨이 없으면 도다리다. 도다리는 살이 넙치보다 진분홍색을 띠는 고급 횟감이고, 지방이 넙치에 비해 적어 맛이 매우 담백하다.

그리고 성어(成魚)가 되는데 무려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보통 양식하지 않고, 자연산 도다리는 육질(肉質)이 넙치보다 쫄깃쫄깃하여 질감(씹히는 맛)이 한 끗 위다. 참고로, 보통 광어새끼나 도다리새끼를 ‘뼈째 썰어 먹는 회’를 일본말로 세고시라 한다. 도다리는 4~6월에 주로 잡히고, 회·건어물·국 등으로 이용된다.

수심 100m 안팎의 모래나 개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살면서 주로 조개고둥(연체동물)이나 새우갯가재(갑각류)의 유생이나 갯지렁이(환형동물)를 잡아먹는다. 산란기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여러 번에 걸쳐 산란한다. 암컷 한 마리가 9만∼39만 개 남짓의 알을 품고, 치어(稚魚)들은 바글바글 물에 떠 살다가 몸길이가 2.5㎝ 안짝이 되면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바닥 생활을 하게 된다.

흔히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넙치’라고 하듯 철따라 생선의 풍미가 다르다. 그리고 봄 오면 먹음직스런 ‘도다리쑥국’을 끓인다. 쌀뜨물에 무를 잘라 넣어 펄펄 끓이다가 도다리를 넣고 익으면 쑥, 실파,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 간을 하여 더 끓인 국이다.

다시 말해 도다리쑥국은 제철 도다리에 해쑥을 넣어 끓인 생선국으로 경남 통영이 으뜸가는 곳이고, 숙취 해소에 그리 좋다 한다. 향긋한 쑥향이 생선의 비린 맛을 없애 주어 국물이 아주 개운하고, 도다리 살(단백질)이 보들보들한 것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며, 그윽한 쑥 향기에 상큼한 맛이 일품이란다. 오늘은 밭가에 쑥쑥 난 갓 싹 틔운 여린 쑥을 한 소쿠리 캐갈 참이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월간중앙 201805호 (2018.04.17)

/ 2021.09.1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