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과 친구되기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나는 동물원에 다닌다. 남들은 놀거나 쉬기 위해 가는 곳을 나는 일하러 다니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그렇기도 한 것이 동물원은 숲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창밖으로 여름이면 진한 녹음이 보이고, 겨울이면 나뭇가지 사이로 온갖 새들을 볼 수 있다.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빌딩 숲에 갇혀 사는 도시 사람들에게 이만한 직장을 갖는 것은 복이다. 하지만 동물원이 정말 좋은 것은 생명에 대해 나날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서울동물원에 왔을 때 나에게 동물들은 그저 밥 잘 먹고, 새끼 잘 낳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존재였다. 내가 자란 지방에는 큰 동물원이 없다 보니 동물이라면 그저 시골 집의 개나 소가 더 친숙했다. 수의과대학을 다니면서도 조그만 동물원에 한번 가본 것이 경험의 전부여서 그런 생각은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동물원 근무 첫날, 선배로부터 동물들 이름부터 차근차근 배우도록 하라는 말을 듣고, "귀한 동물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여기서는 동물마다 각각 이름을 붙여주나 보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런데 넓은 동물원을 걸으면서 340종이 넘는 동물의 이름을 한꺼번에 보고 듣는 것 자체가 문화적 충격이었다. 동물 이름은 어찌 그리도 이상하던지. 개미핥기, 나무늘보, 시타퉁가, 겜스복…. 늘보란 동물이 진짜로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신기하고 놀랍던 동물이 생명을 가진 귀한 존재감으로 다가온 것은 동물원 생활을 시작한 지 한참 뒤였다. 어느 날 어미가 기르지 않아 사육사가 품에 안아 길렀던 어린 침팬지의 눈동자를 바라본 것이 계기였다. 맑고 깊고 한없이 선량한 그 눈 속에 존중해야 할 동물들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 내가 알게 된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사막이라는 극단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낙타와 페넥여우 이야기에서 얼음벌판의 북극곰까지 다양한 삶의 형태와 생존전략을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 볼 것이다. 동물원 안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동물 간의 투쟁과 화해의 이야기도 재미지다. 그러면서 동물과 좀 더 친해지고 그들이 우리의 가까운 친구임을 깨닫게 되면 더없이 좋겠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09.02
/ 2021.09.15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090218390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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