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의 파수꾼 미어캣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부시맨의 땅 아프리카 칼라하리의 붉은 모래사막에는 미어캣이 산다. 이곳은 낮이면 40도를 넘나들다가도 밤이면 영하로 떨어진다. 몸집도 작고 체내대사율도 낮은 미어캣에게 추운 밤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무서운 자칼이 호시탐탐 노려도, 하늘에서 독수리가 언제 나타날지 몰라도 밝은 대낮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
대신 보초를 세우기로 했다. 뒷발로 서서 고개를 쑥 내밀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상한 낌새라도 채면 소리쳐 무리에게 위험을 알린다. 파수꾼은 미어캣 사회에서 최고 위험 직업이다. 그래서 공평하게 돌아가며 보초를 선다. 여기에는 대장도 예외가 없다. 다만 시간이 조금 짧을 뿐이다.
척박한 사막이니 먹이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개중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거나 독을 가진 것도 많다. 지독한 냄새에 머리를 흔들며 진저리를 치지만 그래도 일단 먹고 본다. 토끼 10마리를 죽일 수 있는 뱀독에도 면역이 있으니 독사도 문제 없다.
미어캣들은 참 바쁘다. 먹이도 구해야 하고, 언제라도 도망 갈 수 있게 여러 갈래 굴도 파놓아야 한다. 그래서 무리 지어 살면서 일을 분담할 줄 안다. 하지만 무리가 커지다 보니 서로 간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어렵다. 미어캣은 볼일 보는 공동화장실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곳에서 똥냄새 한번 맡아보는 것으로 누가 같은 무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똥이야 말로 정보의 바다인 셈이다.
같은 무리는 대장의 지휘 아래 다른 무리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상처를 입으면 다 나을 때까지 먹이도 잡아다 준다. 그래서 결속력이 강하다. 동물원에서 근친번식을 막기 위해 서로 다른 무리를 섞을 때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합사의 노하우가 필요한 순간이다.
두 무리의 합사는 냄새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한다.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꽃단장을 시키고 상대 무리의 똥을 향수처럼 몸에 묻혀 주면 아군과 적군이 헷갈린다. 드디어 두 무리가 만나고 사육사가 빗자루 하나 들고 사육장에 들어간다. 빗자루라는 공공의 적을 만난 미어캣은 도망 다니면서 서로 동료가 된다. 그래도 무리 내 서열을 정하기 위한 싸움이 항상 있다. 보초를 유난히 많이 서고 다른 녀석들의 위협에 몸을 낮추는 놈은? 당연히 꼴찌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09.16
/ 2021.09.15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0916174903924
[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사막의 파수꾼 미어캣
부시맨의 땅 아프리카 칼라하리의 붉은 모래사막에는 미어캣이 산다. 이곳은 낮이면 40도를 넘나들다가도 밤이면 영하로 떨어진다. 몸집도 작고 체내대사율도 낮은 미어캣에게 추운 밤은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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