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 왜가리, 지구 생태계와 인간을 지키는 '방패'
서울 쏙 과학 ⑮ 청계천에서 배우는 먹이사슬과 생물 다양성의 원리
[서울&] [서울 쏙 과학]
1m 넘고 잿빛 등 가진 청계천 왜가리
2003년 복원 뒤 날아온 자연의 보물
청계천엔 동·식물 합쳐 552종 서식
아이 키만 한 누룩뱀 발견되기도 해
복원 뒤 종의 종류 크게 늘었지만
자연하천만큼은 다양성 크지 않아
종 다양성 높아지면 멸종 위험 낮아져
생물 종 전체가 서로를 위한 방패 구실
지표면 절반 보전 때 생태계 온전한데
육지 77%, 바다 87% 이미 인간이 점령
“우와! 엄마, 저기 봐! 정말 크다! 저거 무슨 새야?”
서울 청계천 산책로에서 딸아이가 환호하며 물었다. “백로인가, 왜가리인가” 하며 더듬거리다가 얼른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찾아봤다. 백로는 몸 전체가 희다. 눈이 노랗다. 크기는 65~68㎝. 그런데 우리를 위엄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 녀석은 더 크다. 1m는 돼 보인다. 등은 잿빛이고 목아래와 배는 희다. 왜가리다. 왜가리가 있다는 건 녀석 근처에 먹이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물가로 가 물고기와 개구리·뱀·들쥐 따위 다른 생물을 열심히 찾아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왜가리의 눈에 왠지 모르게 살벌한 경계의 빛이 흘렀다. 우리는 집으로 후퇴했다.
우리가 왜가리와 마주친 광교 인근에는 잉어·붕어·미꾸리부터 돌고기·버들치까지 다양한 어류가 산다. 마전교 아래로 가면 종류가 더 다양해진다. 줄몰개·참갈겨니같이 처음 듣는 어종도 있다. 고산자교 부근엔 참개구리·자라·줄장지뱀 등 양서류와 파충류도 많다.
이 지도에서 왜가리는 마전교 아래부터 중랑천 합류부 근처까지 넓은 영역에 표시돼 있었다. 광교 인근은 붉은머리오목눈이·청둥오리·해오라기 서식지다. 왜가리는 사냥감을 따라 다른 새들의 영역까지 올라온걸까? 산책 중인 시민들이 신기해하지 않는걸 보니 이미 왜가리는 광교 주민이 다 된 듯했다. 청계천엔 동물 177종, 식물 375종 등 552종에 달하는 생물이 산다. 2017년에 서울특별시 자연생태과가 조사한 결과다. 2015년 1월엔 어른 새끼손가락만 한 줄장지뱀, 서너 살짜리 아이 키만 한 누룩뱀이 발견돼 사진에도 찍혔다.
이용민 서울시설공단 생태팀장은 “1년에 한 번쯤 시민이 누룩뱀을 찾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 중랑천 합류부에 데려가 놓아준다”고 말했다.2003년 7월, 복원 이전에 보고됐던 청계천 생물종이 10여 종이었던 데 비하면 큰 변화다. 이창석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국제저널 생태공학》 게재 논문에서 “청계천 복원 후 종 조성이 자연하천과 유사해지고 다양성도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자연하천에 비하면 아직 완전한 복원은 아니다.
이 교수는 “복원된 청계천에서 식물의 종 다양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했지만 자연에 가까운 하천보다는 낮았다”며 “종 다양성 측면에서 복원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논문에서 그는 두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했다. 첫째는 하천의 폭을 늘리고 주변의 육상생태계를 복원해 하천생태계와의 연결성을 확보할 것, 둘째는 수로에 대한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동시에 식물 조성과 배치를 생태적으로 전환할 것. 버들습지가 있는 고산자교부터 중랑천 합류부 사이가 그러하다. 이 지역은 36만 1300㎡에 달하는 철새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이 팀장은 “청계천 하류는 최대한 자연상태로 복원하고 있다”며 “2013년 이후 보를 철거한 하류부에선 모래톱이 생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구간 복원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팀장은 “청계천 상류부는 방문객이 많아 생태에 영향을 주는 데다 옹벽이 쳐져 하류부처럼 다양한 식생을 복원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큰 돌로 돌무더기를 쌓아 물고기가 알을 낳고 숨을 만한 ‘놀이터’를 만들었다. 물고기 놀이터는 다산교와 황학교 사이에 있다.
왜 이렇게 종 다양성을 높이려 애쓰는 걸까? 여기서 퀴즈 하나. 중학교 신입생이 푸는 문제다. 기사 위쪽에 있는 그림은 서로 다른 생태계 ‘가’와 ‘나’의 먹이사슬을 나타낸 것이다. 어느 쪽이 생물 다양성이 높아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생태계일까. 답은 ‘나’. 먹이사슬이 복잡해지면 멸종 위험이 줄어들고 생태계 안정성이 높아진다.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이란 종과 생태계뿐 아니라 분자, 유전자 등 생명 현상의 모든 수준에서의 다양성을 뜻한다.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처음 만든 개념이다. 왜 중요할까. 윌슨은 자신의 책 《지구의 절반생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제안》에 이렇게 적었다.
“생물 다양성 전체는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 구성 종 하나하나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 (중략) 멸종하는 생물이 늘어날 때 생물 다양성은 일종의 전환점에 도달하고, 그 전환점을 도는 순간 생태계는 붕괴한다.”윌슨은 “지표면의 절반을 보전할 때 생태계들이 전부 다 온전히 들어가고 구성 종들도 대부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도시 말고 다른 곳을 보전하면 되지 않겠냐고? 호주 퀸즐랜드대와 미국 야생동물보존협회 연구진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육지의 77%, 바다의 87%가 이미 인간에게 점령당했다. 도시도 자리를 내줘야 한다. 왜가리를 비롯한 ‘방패’를 놓을 자리다.
글·사진=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출처] 한겨례 2021.08.19
https://news.v.daum.net/v/2021081914330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