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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다섯째로 많이 재배되는 작물, 수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06)

푸레택 2021. 9. 6. 21:59

△ 대전의 한 들녘 수수밭에서 농민이 알알이 영근 수수를 살펴보고 있다.

■ 다섯째로 많이 재배되는 작물, 수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더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예부터 많이 수확.. 식용, 사료용뿐 아니라 빗자루로 만들어 써 실생활에서도 가까워

수수에는 곡식수수가 있고, 설탕을 만드는 데 쓰는 사탕수수가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돌이나 생일에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여야 붉은색을 싫어하는 요사스런 귀신(사귀, 邪鬼)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고 했다.

“수수팥떡 안팎이 없다”는 속담은 겉과 속이 모두 불그스레한 수수팥떡은 속과 겉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안팎의 구별이 없는 경우를, ‘칠팔월 수수 잎사귀 꼬이듯’이란 말은 음력 칠팔월에 수수 잎이 햇볕에 말라 꼬이듯이 마음이 배배 꼬인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수수 농작물은 고온에다 쬐는 햇볕의 양이 많아야 한다. 가물을 타지 않고, 오염된 토양이나 가뭄에도 견뎌내는데, 그중에서도 한발에 잘 견디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뿌리: 잎의 표면적비’가 아주 큰데 이는 뿌리가 매우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잎사귀가 왁스(밀랍)성분으로 덮여 있고, 심한 가뭄에는 잎을 돌돌 말아 증산(蒸散)을 줄이며, 한발이 오래 가더라도 죽지 않고 휴면(休眠, dormancy) 상태에 든다.

어릴 때만해도 수수가루를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인 ‘수수부꾸미’를 얻어먹은 기억이 나고, 찰수수가루로 만든 ‘수수떡’도 별미로 먹었다. 수수깡은 수수 원줄기를 말하는데, 수수깡을 알맞은 길이로 잘라 칼로 겉껍질을 벗기면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속살(심)이 나온다. 수수나 옥수수줄기의 껍질을 벗긴 심으로 미술공예나 어린이들의 공작재료로 즐겨 썼다. ‘수숫대’와 ‘수수깡’은 같은 말로 둘 다 널리 쓰이므로 둘 모두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다. 또한 줄기에서 열매를 털고 남은 줄기로 수수 빗자루를 맨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가루를 빚어 만들고, 맥주는 보리를 발효시켜 만드는데, 중국 백주(白酒, 배갈)인 고량주는 고량(高粱), 즉 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고량으로 담근 술은 최고 70도까지 올라가 불을 갖다 대면 옮겨 붙을 만큼 알코올 도수가 아주 높다. 알다시피 양주나 고량주 등의 고급술은 모두 여러 번 증류해 불순물이 적은 술이다.

수수(Sorghum bicolor)는 외떡잎식물, 화본과(벼과)의 한해살이풀로 고량(高梁)·노제(蘆穄)·당서(唐黍)·촉서(蜀黍)·노속(蘆粟)이라고도 한다. 줄기에는 옥수수처럼 10∼13개의 마디가 나고, 줄기 끝에 이삭이 달린다. 키가 1.5∼3m로 줄기표면은 딱딱하고,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며, 손으로 만지면 미끈거리고 끈적이는 흰색의 밀랍물질이 묻었으며, 줄기속이 꽉 차 있다.

잎은 마주 나고, 길이가 1m, 나비는 5cm 정도로 길고 넓고, 줄기마디마다 한 장씩 달린다. 처음에는 잎과 줄기가 녹색이나 자라면서 차츰 붉은 갈색으로 변한다. 또 옥수수처럼 줄기 아래에 측근(곁뿌리)이 빙 둘러나 바람에 넘어지는 것을 막는다.

◇ 팝콘처럼 튀겨 먹는 수수

수수(sorghum) 열매알맹이는 2~4mm이고, 씨알 빛깔은 흰색, 노란색, 갈색, 붉은 갈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씨앗의 배젖(배유, 胚乳)의 녹말성질의 차이에 따라 메수수와 찰수수가 있다. 탄수화물이 주를 이루고 단백질은 쌀보다 조금 많은 9%선이다. 흔히 밭에 심고, 척박한 땅이나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조생종은 벼과식물 중에서도 생육기간이 가장 짧아 파종 후 약 80일이면 수확할 수 있어 고랭지나 개간지 등의 작물로도 이용된다. 수수는 열대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지금도 에티오피아와 동부아프리카에서 유전적으로 다양한 야생 수수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중국을 통해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재배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수는 오곡(쌀, 보리, 콩, 조나 수수, 기장)에 속하는 곡물로 오곡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잡곡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소량으로 재배되고 있는 실정인데, 내 자드락밭 가까이에 한 농부가 해마다 수수를 제법 많이 심어 수수가 익을 무렵이면 참새 떼를 막으려고 양파주머니 따위로 열매이삭을 덮었었다. 그런데 올해는 놀랍게도 그 넓은 100여 평 밭을 가는 망으로 된 잘 짜인 그물로 넉넉히 덮었다. 한마디로 새가 끼는 것을 막기 위해 커다란 통그물을 쳤었다. 처음 보는 새그물에 눈이 번쩍! 어찌 저렇게 큰 그물을 짜는지 신통방통했다.

수수는 쌀(rice), 밀(wheat), 옥수수(maize), 보리(barley)에 이어 다섯째로 많이 재배하는 곡물이다. 알곡용, 당분용, 목초용, 빗자루용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보리나 조에 비해 품질은 떨어지지만 가루로 빵을 만들기도, 팝콘처럼 튀겨 먹기도 한다. 에탄올(에틸알코올, ethanol)이나 시럽 생산에도 쓰인다.

보통 배수가 양호한 땅에 심고, 콩, 땅콩을 비롯한 콩과 작물과 윤작(돌려짓기)하거나 특히 콩밭의 콩 포기 사이에 섞어 심어 가꾸기도 한다. 질소비료를 과용하지 않도록 하고, 3요소 비료를 고루고루 시비해 영양분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탕생산에 쓰이는 사탕수수(Saccharum officinarum)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남아시아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의 남아시아와 서태평양으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북서쪽에 이르는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고, 브라질과 인도가 최대 산출국이라고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출처] 월간중앙 2018.12.25

/ 2021.09.06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