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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5가지 맛 나는 만병통치약 ‘오미자’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5021.09.06)

푸레택 2021. 9. 6. 21:45

오미자나무는 목재로는 쓸모가 적지만 약으로는 귀하게 쓰인다.

■ 5가지 맛 나는 만병통치약 ‘오미자’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단맛·신맛·쓴맛·짠맛에 ‘감칠맛’ 더해져… 간 기능 개선 효과에 눈을 밝게 하고 심장에도 이로워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날인 2월 9일.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개막 만찬에서 각국 귀빈을 대접하려고 강원도에서 나는 농축산물을 이용한 세 가지 요리와 톡 쏘는 우리 술이 올랐다고 한다. 그날 사용된 건배주는 다섯 가지 맛(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을 내는, 문경 오미자로 만든 장밋빛의 막걸리 ‘오희(O’HEE)’다. 오륜(五輪)과 오미자(五味子, five-flavor-fruit)가 멋지게 어울린다 하겠다.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이 나는(五味) 열매(子)라 하여 붙은 이름인데 그 맛 중에서도 신맛이 제일 강하다.

미리 말하지만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중에서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매움’은 아픈 감각(통각)이다. 또 ‘떫음’은 오그라들고 조이는 눌림 감각(압각, 壓覺)으로, 이들은 결코 미각(맛)에 들지 않는다.

바탕 맛은 사미(四味)인 단맛·신맛·쓴맛·짠맛인데 요새는 거기에 ‘감칠맛’을 더해 다섯을 기본 맛으로 본다. 다시 말해 일본말로 ‘맛 좋은’, ‘감칠 맛’이란 뜻이 든 ‘우마미(umami)’를 다섯 번째로 치니, 미역·다시마 등의 천연 양념(해조류 국물)이나 화학 조미료인 글루탐산모노나트륨(MSG)의 맛을 이른다. 이 다섯이 이리저리 어울려서 여러 오묘한 맛을 만드니 그야말로 삼원색(빨강·노랑·파랑)이 수많은 색깔을 지어내는 것과 같다 하겠다.

아무튼 여태껏 가르치고 배워온 “혀끝은 단맛, 혀뿌리는 쓴맛, 양쪽 가장사리는 신맛, 가운데는 짠맛을 본다”는 ‘맛지도(tongue map, taste map)’ 이야기는 꽤나 거짓이 되고 말았다. 맛은 혀나 잇몸, 입천장, 목구멍 등에서 느끼고, 그 느낌의 정도가 혀의 자리에 따라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오미자는 오미자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만목, 蔓木)로 중국 동북부와 극동러시아가 원산지이고, 주로 한국과 일본·중국·러시아 등지에서 자생한다.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고, 적당한 습도와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거름을 듬뿍 넣어 포도와 비슷한 조건에서 재배한다. 러시아에서는 기념 우표로 만들어질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식물이고, 그곳에서 특히 많이 재배하여 주스나 와인, 추출물, 감미료 등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오미자에는 오미자(북오미자)·남오미자·흑오미자가 있고, 오미자는 주로 태백산 일대에 많이 자라며, 남오미자는 남부 섬 지방, 흑오미자는 제주도에 난다.

오미자는 높은 산(200~1200m)의 숲 속의 큰 나무 그늘 밑에 주로 나고, 산골짜기 암반지대에서 빽빽이 무리를 지어 자란다. 이웃나무를 기우뚱 감아 올라가거나 바위에 기대어 자라며 줄기는 길게 6~9m까지 뻗는다.

잎 길이는 7~10㎝ 남짓으로 줄기에 어긋나게 달리고, 끝이 뾰족한 넓은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자잘한 톱니(거치, 鋸齒)가 잎잎이 그득 난다. 잎자루는 1.5~3㎝ 안팎으로 붉은빛이 돌고, 가을에 노랗게 물든다.

어린나무줄기는 적갈색이지만 묵을수록 짙은 회갈색이 되고, 얇게 갈라져 너덜너덜해지며, 껍질눈(피목, 皮目)이 잔뜩 난다. 줄기 속 가장자리는 붉은빛이 도는 담갈색이고, 안쪽에는 붉은빛을 띤 갈색 심이 있으며, 늙으면 속이 썩어서 텅 빈다.

급성 황달이나 전염성 간염에도 효과

꽃은 6~7월 햇가지에 피고, 지름이 얼추 1.5㎝나 되는 큼직한 꽃이 3~5송이씩 모여 달린다. 암꽃과 수꽃이 딴 나무에 피는 자웅이주(암수딴그루)로 암꽃은 황백색이고, 꽃잎 안에는 붉은 색이 짙게 감돌고, 녹색 암술이 둥근 공처럼 뭉쳐난다. 희붉은 수꽃은 수술이 5개가 있다.

8∼9월이면 꽃받침이 자루 모양으로 길어져 거기에 새빨간 열매가 마치 포도송이처럼 앙증맞게 알알이 열리며 각각의 열매 속에는 올진 적갈색 씨앗이 한두 개씩 들어 있다. 겨울에도 악착같이 가지에 매달린 채로 있어서 으레 산새들의 겨울양식이 된다.

오미자나무의 번식은 비교적 쉬워 봄가을에 새끼포기를 나누어 심고, 가을에 종자를 따서 한데(맨땅에) 묻었다가 이듬해 파종한다. 오미자나무를 심기에 적합한 곳은 서북향의 반 음지이고, 심은 지 3년째부터 결실을 시작한다. 오미자나무야말로 목재로는 쓸모가 적지만 약으로는 엄청 귀하게 쓰이는 중요한 약용수종(藥用樹種)이다.

줄기는 초봄에 잘라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쓰고, 열매는 가을에 따서 시루에 찐 뒤 건조해 쓴다. 말린 열매를 찬물에 오래 담가서 붉게 우러난 물을 화채(花菜) 국물로 쓰고, 꿀이나 설탕을 넣어 음료수로 마신다. 또 밤·대추·미삼을 함께 넣고 끓여 차를 만들거나 술을 담그기도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한 전통차로 좋고, 입이 자주 마를 때는 칼칼한 갈증을 달래고, 여름 더위를 견디게 한다. 오미자열매에는 요새 와서 (뒤늦게) 간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잔드린(schizandrin), 고미신(gomisin)과 식물성 에스트로겐인 리그난(lignans), 신맛을 내는 사과산과 힘(에너지)을 곧바로 내는 시트르산(구연산) 등이 들어 있다.

오미자는 오래도록 잘 치유되지 않는 기침을 멈추게 하고, 급성 황달이나 전염성 간염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또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내리며, 면역력을 높여주고, 폐 기능을 강하게 하며, 진해·거담 작용이 있어서 엔간한 기침은 거뜬히 치료된다. 또 눈을 밝게 해줄뿐더러 장을 따뜻하게도 한다고 한다. 일면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정말로 약효가 한도 끝도 없이 많다.

그 밖에도 노화 예방, 수명 연장, 혈당 조절, 간염 치료 및 예방, 콜레스테롤 저감, 폐렴·천식 치료, 설사, 발한, 발기부전, 멀미, 우울증, 허약 체질, 당뇨, 빈뇨, 거친 피부나 머릿결에도 좋다고 한다. 오미자는 긴 말 필요 없이 선약·단약에 만병통치약이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출처] 월간중앙 201804호 (2018.03.17)

/ 2021.09.06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