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생물 5515종 중 동물도 식물도 아닌 건 몇 종일까?
서울 쏙 과학 ⑪ 공원에서 배우는 생물분류의 원리
[서울&] [서울 쏙 과학]
“수박은 동물도 식물도 아니다”라는
딸과 친구 얘기 듣고 “끙” 신음 나와
‘어떻게 하면 생물분류 알게 해줄까’
고민 속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찾아가..
초등학교 고학년, 동물계·식물계 외에
원생생물계, 균계, 세균계 등도 배워
그러나 책 통해 배우는 것은 한계 있어
“자연과 자주 만나야 아이가 쉽게 이해”
아홉 살 난 딸 친구가 열 고개 퀴즈를 냈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것, 먹는 것, 빨간 것, 줄무늬가 있는 것. 틀림없이 합성식품이다 싶어 “젤리!”라고 외쳤다. 딸 친구가 제꺽 “땡!”이라 답했다. 그때, 딸이 말했다.
“수박?”
“딩동댕!”
딸 친구가 손뼉을 쳤다. 혼란스러웠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아이들 말을 종합하자면 이랬다. 동물은 움직인다. 식물은 흙에서 자란다. 그런데 수박은 가게나 냉장고에서 나온다. 움직이지도 않고, 흙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먹는 것’이다. “끙” 신음이 나왔다. 수박 덩굴 대신 수박, 돼지 대신 삼겹살을 보고 자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물, 식물 그리고 그 외의 생물을 쉽게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 개념부터 제대로 알아보자 싶어서 인터넷 검색창에 ‘동물, 식물, 미생물(원생생물)’을 넣어봤다. 이런! 내 머릿속 분류 체제는 19세기 것이었다. 중학생들은 ‘동물계, 식물계, 원생생물계’에 ‘균계, 원핵생물계’를 합쳐 5계를 배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3~6학년 교육과정에선 원핵생물계를 ‘세균계’와 ‘고세균계’로 나눠 생물을 6계로 분류했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것이 아주 많았다. 마음이 겸손해졌다.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아는 척하지 않길 잘했다.
초등학교 교사용 과학 개념서를 구해 ‘생물의 분류’ 부분을 읽어봤다. ‘동물은 다세포성이고 운동능력이 있으며 다른 생물로부터 양분을 얻는다. 균류는 다른 생물을 분해하고 흡수하여 양분을 얻는다. 식물은 다세포성 진핵생물로 광합성을 해 스스로 양분을 얻는다. 원생생물은 균류·식물·동물에 해당하지 않는 진핵생물이다. 고세균은 극한 환경에서 사는 단세포 생물이다. 진정세균은 대부분 작고 단순한 구조의 단세포 생물이다.’ 진핵생물이란 원핵생물과 달리 핵막이 있어 핵이 뚜렷이 구분되는 생물이란다. 이렇게 말하면 애들이 이해할까?
아이들한테 쉽게 설명해주려면 눈으로 보고 전문가 설명을 들으며 먼저 내 이해를 높여야 할 것 같았다. ‘서울의 생태정보’에서 정보를 찾아봤다. 서울시엔 총 5515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특히 북한산·월드컵공원·청계산·관악산·남산 등 다섯 곳의 종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나와 있었다. 서울시청 자연자원팀에 조언을 구했더니 남산, 그리고 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의 김지석 과장을 맨 처음 추천했다.
가는 길은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를 선택했다. 남산3호터널 관리소 입구를 지나는데, 소나무숲 아래로 진주 알처럼 희고 작은 꽃송이들이 피어 온갖 나비와 크고 작은 벌이 소란스럽게 오갔다. 크고 작은 나무와 관목이 오밀조밀 들어선 숲속에선 이름 모를 새들이 저마다 제 소리를 냈다. 길가 인공수로로 맑은 물이 흘렀다. 삼십여 분 걸으니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가 나왔다.
“쉬땅나무네요. 점이 많은 건 푸른부전나비, 흰 건 대만흰나비. 큰 벌은 좀뒤영벌, 작은 벌은 꿀벌이에요. 꿀벌은 우리 사업소 양봉통에서 날아간 것 같은데요. 양봉꿀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자생종이에요.”
둘레길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내밀었더니 김 과장한테서 포털 검색창 수준의 속도로 답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식물과 동물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던 생태학자였다. 숲에서 녹음한 새소리를 듣자 그는 ‘남산공원 새 이야기’ 소책자를 펼쳐 들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목소리 주인공의 모습을 알려줬다. 나도 모르게 소책자를 움켜쥐었다.
“으아, 비티에스(BTS) 노래에 나오는 그 뱁새가 이렇게 귀여운 새였어요?”
“예. 붉은머리오목눈이라고 해요. 원래는 털이 더 붉은데, 책자엔 좀 희게 나왔네요. 제가 찍은 동영상 ‘남산공원 목욕의 신을 찾아서’에 뱁새 목욕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게 더 실제 모습에 가까워요.”
뱁새는 남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생생물 1170여 종 중 일부다. 김 과장은 천연기념물 제204호이자 멸종위기종인 ‘팔색조’ 소리를 직접 귀로 들었다고 했다. 5월 말 장충단공원 국궁장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는 6월 초 그쳤다. “팔색조는 여름 철새라 일주일 지내다 이동한 것 같다”고 그가 추측했다. 남산의 모든 생물을 이런 식으로 찾아낼 수는 없을 터. 어떻게 1천 종이 넘는 생물을 찾아낸 걸까.
“여러 관찰자가 모니터링한 것과 조사 프로젝트를 합친 결과죠. 2016년부터는 자체적으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야생생물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또 ‘네이처링’(www.naturing.net)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자발적으로 자기 동네 생태정보를 공유하는 분들도 있고요.”
네이처링 사이트에서 ‘서울’ 데이터를 분류해봤다. 총 8만7258건이 나왔다. 전국적으로는 75만 건 이상의 자연관찰이 공유됐다. 2020년에만 ‘자연관찰자’로 3만2395명이 참여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코너로 사진이나 녹음파일을 올리면 ‘자연안내자’ 등 다른 회원들이 자기가 아는 정보를 댓글로 달았다. 활동 중인 ‘자연안내자’는 47명. 동물·식물·곤충·생태 등 저마다 자기 전문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동물과 식물, 생물과 비생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에게 김 과장은 “책에서 답을 구하기보다는 주변의 산이나 강, 공원 등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곳으로 많이 나가라”고 조언했다. “자연스럽게 자연과 만나다 보면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 구분도 자연스럽게 될 것”이란다.
도시에서 아이들에게 가까운 자연은 공원이다. 김 과장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사이트(yeyak.seoul.go.kr)에서 ‘교육강좌’ 중 ‘자연/과학’을 선택하면 여러 가지 생태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6월22일 기준으로 동물, 식물, 숲 해설 등 54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딸의 머리를 빗기는데, 방귀를 뽕 뀐다. 공원보다 가까운 자연, 인체가 느껴진다. 아이한테 아는 척한다.
“배 속에서 ‘메테인 생성 세균’이 말을 거네.”
“그게 뭐야?”
“지구에 산소가 없던 시절의 세균이라 ‘옛 고’(古) 자를 써서 고세균이라고 부르는 건데, 요즘 세균은 살 수 없이 아주 뜨거운 곳이나 산소가 없는 곳에 살아. 우리 배 속에서도 살고. 참, 얜 동물도 식물도 아니지만 생물이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자연법칙은 결코 머리로 알아내는 게 아니다. 그건 그냥, 살면서 깨달은 진리와 함께 직감적으로 알아채곤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라도 자연과 함께 살면 우리 아이들도 직감으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고세균인지.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그래픽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출처] 한겨레 서울앤 입력 2021.06.24
/ 2021.09.07 편집 택
https://news.v.daum.net/v/20210624150308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