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호르몬 이야기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요즘 미세먼지가 주요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지만, 제초제(herbicide)의 일종인 고엽제(枯葉劑)에 함유된 다이옥신과 환경호르몬 문제가 높은 관심과 함께 우려가 확산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월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들이 숨어 활동하는 밀림의 숲을 고사시키기 위해 정글에 뿌린 인공합성제초제인 고엽제에 우리나라의 참전 군인들이 노출됐었기 때문에 불거진 문제였다.
환경호르몬(environmental hormone)은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과제이지만 그에 대한 정부나 대중들의 인식 수준은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분비선에서 분비돼 특정 생화학 반응을 통해 우리 몸의 항상성(恒常性) 유지에 관여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비해 환경호르몬은 ‘외인성 내분비 교란물질’로 불리고 있다. ‘외인성(外因性)’은 환경호르몬이 몸에서 생성돼 분비되는 물질이 아니라 산업 현장이나 쓰레기 소각장 등에서 방출되거나, 컵라면 용기, 젖병, 장난감 등에 함유된 특정 인공합성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와 호르몬처럼 작용하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정상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교란시키는 물질인 환경호르몬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다이옥신, 비스페놀A, 스티렌다이머, PCB(폴리염화비페닐), 폴리카보네이트, 프탈레이드 등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170여종의 화학물질을 지적해 발표한 바 있는데, 우리가 일상에 접하는 많은 물품들에 이러한 물질들이 함유돼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중의 하나인 다이옥신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면 호르몬의 작용을 교란시켜 유전자 변이, 간 손상, 기형아 출생, 면역체계의 변화, 피부질환 등을 유발하며, 우울증이나 분노 등의 유발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분출되는 다이옥신이 구름에 섞여 지상에 비로 내려와 밭의 채소나 목장의 목초에 흡수되면 채소를 먹거나 목장의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나 우유를 먹을 경우 다이옥신은 우리 몸에 축적돼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게 된다.
강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간 다이옥신은 생태계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이옥신이 식물성 플랑크톤에 흡수되면 이를 먹는 물고기의 몸에 축적되고, 높은 영양 단계에 있는 육식성 물고기를 먹을 경우 다이옥신이 대량으로 우리 몸속에 축적될 수 있다. 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특정 화합물이 영양단계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10배씩 농축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합성수지 원료인 비스페놀A(BPA)는 불임, 유방암, 기형아의 출산, 성조숙증, 생식기능 장애 유발이나, 당뇨병, 비만, 지능이나 행동 장애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호르몬의 일종이다. BPA는 젖병이나 플라스틱 장난감, 통조림이나 음료수 캔, 심지어는 계산기에서 뽑아내는 영수증이나 은행의 대기 순번표 등에서도 검출이 되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유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식세포에 붙어 5대까지 유전된다는 보고에 따라 재앙덩어리 유전자로 불리고 있다. 이렇게 환경호르몬이 미래 사회에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환경호르몬에 관한 관심도는 매우 낮으며,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지 않고 있다. 환경호르몬 문제에 대한 정부나 관련 부처의 관심도가 낮은 이유는 환경호르몬의 영향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며,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지적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어 5년 임기의 정권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 일상에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양질의 삶을 위한 필수 과제이다. 정부의 관계 부처,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이 문제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 방안 마련에 앞장서 나서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의 환경호르몬 영향에 대한 체험 교육과 함께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올바른 인식 확산도 이루어져야 한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유전자처럼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는 환경호르몬의 특성 때문에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위해 더욱 더 중대하게 다루어야 할 주요 과제이다.
글=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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