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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죽음학’ 이야기 (2021.09.02)

푸레택 2021. 9. 2. 12:00

■ ‘죽음학’ 이야기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웰에이징(Well-aging), 살아온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들이 풍미하고 있다. 그러나 웰다잉을 이야기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그의 책에서 죽음은 삶이라는 ‘임시직’ 이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라고 표현하며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24시간씩 죽음으로 다가가며,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평소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다가 몸이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거나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태어나서(生) 흐르는 세월에 따라 늙어가며(老), 질병(病)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다가 삶의 종착역인 죽음(死)에 이르는 ‘생로병사’ 과정을 겪게 된다. 삶에서 마지막으로 맞게 되는 ‘죽음’이란 명제는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할 때부터 맞닥뜨려온 과제이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죽음의 세계가 인간의 경험과 지각 영역의 밖에 있어 그 본질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삶을 위한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분야가 ‘죽음학(Thanatology)’이다. 삶과 죽음을 연계하는 생사학(生死學)이라고도 부르는 죽음학은 철학, 종교학, 사회학, 심리학, 생명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돼 있다. 임종과 죽음, 연명치료 중단, 임종 환자들을 다루는 호스피스 문제, 죽음 뒤의 삶 등은 물론 자살과 같은 사회문화적 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들도 죽음학의 주요 관심사이다.   

죽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근사체험(近死體驗)에 대한 학술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근사체험이란 임종이 다가왔을 때나 일시적으로 뇌와 심장기능이 정지해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상태에서 사후세계의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 ‘국제근사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Near-Death Studies)’가 창립돼 근사체험에 대한 학술지가 발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6월 ‘한국죽음학회’가 창립돼 죽음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죽음의 본질과 함께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원인은 두 가지로 제안되고 있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에 간직돼 있는 유전적 프로그램에 의해 발현되는 선천적(先天的) 원인이며, 다른 하나는 살아가는 환경에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후성유전적(後成遺傳的) 원인이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크게 작용하지만,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면 일상에서 자신의 행동과 습관에 따른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후성유전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임종을 맞이할 때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죽음학에서는 ‘인격적 죽음’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인격적 죽음은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가 의술에 의존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후세상으로 불리는 영계(靈界)를 수용해 저승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가족이나 친지들과 따뜻한 사별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로망 롤랑은 ‘인생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출발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구분이 되는 2박 3일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 삶에서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었고, 내일이 되면 오늘은 바로 어제가 된다. 이 말에는 ‘삶’이 오늘이라면 ‘죽음’은 내일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다리는 ‘사랑’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맞이해야만 하는 죽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자세로 삶과 죽음을 함께 사랑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글=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박사

/ 2021.09.0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