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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생명의 설계도, DNA 이야기 (2021.08.29)

푸레택 2021. 8. 29. 17:24

■ 생명의 설계도, DNA 이야기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생물은 종(種)에 따라 외형적으로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각 개체별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사람도 눈, 코, 귀, 입 등 외형은 같지만 얼굴의 모양이나 눈동자의 색깔 같은 겉모습은 물론 혈액형과 같은 형질도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서 목적지로 가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정확하게 다시 집을 찾아 돌아온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이나 일상의 습관과 행동의 차이는 ‘생명의 설계도’라고 부르는 유전자(遺傳子)의 본체인 DNA에 담겨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공 DNA’ ‘기부 DNA’ ‘창업가 DNA’ ‘음악 DNA’ 심지어는 ‘진보와 보수 DNA’ 등에서 보는 것처럼 DNA라는 말이 생명과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와 우리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회자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DNA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남녀로 성(性)이 다르게 태어난다. 그리고 겉모습이나 말투와 같은 행태, 혈액형과 같은 형질은 물론 수명(壽命)도 사람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런 다양한 생명의 특성은 수많은 생화학 반응에 의해 발현되는데, 그 기반에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다.

생물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세포(細胞, cell)이며, 사람의 몸은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에서 DNA 가닥은 단백질과 결합해 염색체를 이루어 핵 안에 간직돼 있다. 사람의 경우 핵 안에 46개(2n=46)의 염색체가 들어 있으며, 이 염색체들에 들어있는 DNA 가닥을 펴면 길이가 약 1.8m 정도 되며, 60조개나 되는 세포들에 들어있는 DNA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길이가 된다.

유전자의 개념은 ‘멘델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던 멘델(Gregor J. Mendel)에 의해 처음 제시됐다. 1865년에 멘델은 완두콩의 교배 실험을 통해 유전인자(遺傳因子)를 제안하며 유전의 원리를 처음으로 발표했지만, 많은 과학적 발견이 그러해 왔듯이 당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멘델의 유전 원리는 그 후 35년이 지난 1900년에 와서야 코렌스(C. Correns), 체르마크(E. Tschermak) 그리고 드 브리스(H.de Vries) 등 세 명의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학계에 알려졌고, 이를 ‘멘델 유전법칙의 재발견’이라 일컫는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된 후 많은 과학자들이 멘델이 제안했던 유전인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1903년 서튼(W. S. Sutton)은 곤충의 생식과정 연구에서 멘델이 추정한 유전인자가 염색체에 존재한다는 염색체설(染色體說)을 제안했고, 1909년에 요한센(W. L. Johannsen)은 멘델이 제안한 유전인자를 유전자(Gene)로 명명했다. 유전자의 실체는 1928년에 그리피스(F. Griffith)에 의해 확인됐으며, 1952년에 허시(A. Hershey)와 체이스(M. Chase)가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냈다.

1953년에 왓슨(J. D. Watson)과 크릭(F. Crick)에 의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면서 유전자의 개념과 구조가 완전하게 확립됐다. 지난 2013년에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60주년 기념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성대하게 열리기도 했다.

생명의 본질인 DNA의 구조와 기능이 밝혀지며, 21세기는 DNA가 중심이 되는 생명공학(BT, Biotechnology)의 시대로 열려있다. BT 기술은 인류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오고 있는 질병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맞춤의학, 바이오 장기, 경구용 백신 개발 등은 물론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치료, 유전자 재조합을 이용한 GMO 생산, 인간 게놈프로젝트, 범죄자나 자연재해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개인의 식별을 위한 유전자검사 등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DNA 가닥의 특정 부위를 원하는 대로 잘라내 다시 붙이고, 편집 교정(editing)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이 대두되고 있다.

바이오 시대로 열린 21세기는 생명사회(Biosociety)라고도 부른다. 앞으로 다가올 생명사회에서 인류가 기대하는 것은 생명공학을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바이오토피아(Biotopia = Biotechnology + Utopia)가 아닐까. 바이오토피아의 중심에 자리하게 될 생명의 설계도인 DNA에 관심을 가져보자.

글=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