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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유전자들의 고향마을 염색체에 담긴 생명 이야기 (2021.08.27)

푸레택 2021. 8. 27. 16:51

■ [생명과 삶] 유전자들의 고향마을 염색체에 담긴 생명 이야기 /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자녀가 부모를 닮아 태어나는 유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박목월 작사, 손대업 작곡 동요 ‘얼룩송아지’ 가사가 떠오른다. 노래의 1절은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로 시작해 2절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았네’로 이어진다. 엄마소가 얼룩소라 얼룩송아지가 태어나고, 엄마 귀가 얼룩 귀라 얼룩 귀로 태어난다는 유전의 주제가다운 의미가 담겨있다.

남녀의 성(性)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얼굴 모습, 피부의 색깔, 키, 혈액형, 말투 등과 같은 다양한 특징들은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DNA)에 간직돼 있는 정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형질을 발현하는 유전자들은 모두 세포 핵 안의 염색체에 들어 있다. 그래서 염색체가 유전자들의 고향마을로 불리는 것이다.  염색체(染色體, Chromosome)는 분열하는 세포에서 특정 염색약으로 염색해야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염색체 이야기는 생명공학의 시대로 열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미 생명과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와 일상에 상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 몸은 60조개가 넘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세포의 핵에는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로부터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46개(2n=46)의 염색체들이 간직돼 있다. 이 염색체들은 남녀 공히 22쌍(44개)씩 지니고 있는 상염색체(常染色體)와 성(性)의 결정에 관여하는 X염색체와 X염색체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Y염색체로 구분이 되는 1쌍의 성염색체(性染色體)로 구분이 된다. 성염색체의 조합은 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의 염색체 조성을 나타낼 때 상염색체와 성염색체를 구별해 남성은 2n=44+XY, 여성은 2n=44+XX로 표기한다. 남녀의 성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 과정에서 결정된다. X염색체가 하나만 들어 있는 난자(22+X)가 X염색체를 가진 정자(22+X)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면 딸(44+XX)로 태어나고, Y염색체를 가진 정자(22+Y)와 만나면 아들(44+XY)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질 내로 사정된 정액에 들어있는 X염색체 정자와 Y염색체 정자의 수가 같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들과 딸이 태어날 확률은 반반이지만 집안에 따라 아들이 많은 집안과 딸이 많은 집안으로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X염색체 정자가 운동성이 활발해 난자에 더 많이 접근하면 딸이 많이 태어나고, 반대로 Y염색체 정자가 운동성이 활발하면 아들이 많이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수정 과정에서도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진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염색체 분석기술의 발달로 사람 염색체의 표준 핵형이 정해지며, 염색체의 수나 모양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유전병들의 정체가 많이 밝혀지고 있다. 그 실례로 몽골리즘이라고도 부르는 다운증후군(Downs syndrome)은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많아 2n=47이 되어 발생하는 유전병이다. X염색체가 하나가 부족해 나타나는 유전병으로 터너증후군(2n=44+X)이 있다. 이 증후군 사람은 Y염색체가 없어 겉모습은 여성으로 나타나지만 난소(卵巢)가 발달하지 못하고 키가 작으며, 사춘기가 되어도 월경이 없는 경우가 많다. X염색체 2개에 Y염색체를 하나 더 가진 클라인펠터증후군(2n=47=44+XXY)도 있다. 이 증후군 사람은 Y염색체를 지니고 있어 외견상 남성으로 나타나지만, X염색체가 2개이기 때문에 정소(精巢)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유방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색맹(色盲)은 X염색체에 놓인 열성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 현상으로 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색맹의 유전에서 정상 염색체를 X, 열성유전자를 가진 염색체를 X'로 표기하면 남성의 조합은 XY(정상)와 X'Y(색맹)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에 비해 X염색체가 두 개인 여성의 경우에는 그 조합이 XX(정상), XX'(보인자) 및 X'X'(색맹)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가 색맹(X'Y)이고 어머니는 정상(XX)일 때 태어나는 자녀들의 유전자 조합에서 딸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색맹유전자를 지닌 X'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외형으로는 정상인 보인자(X'X)로 태어난다. 그에 비해 아들은 아버지가 색맹이지만 어머니로부터 우성유전자를 지닌 X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모두 정상(XY)으로 태어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정상(XY)이고 어머니가 색맹(X'X')일 경우에는 어떨까.

사람마다 다른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유전자들은 그들의 고향마을인 염색체에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들이 대를 이어 후손에 전해지며 고향마을에 변화가 생긴다. 좋은 습관과 긍정적 사고,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유전자들의 고향마을에 평화와 행복을 깃들여보자.

글=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