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박만엽
무척이나 힘든 날이었다
몸이 아프면 눈을 감고 눕고 싶어만 진다
나는 자고 있는지 알았는데
온종일 한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촛불로 장식된
음산하지만 분위기 있는 카페도 가보았고
푸른 하늘을 받쳐주는 바닷가의
드넓은 백사장도 둘러보았고
주변 산을 맴돌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공원의
느티나무 옆 벤치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찾는 사람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마의 땀 구슬은 눈에 고여 눈물이 된다
나는 그립고 보고 싶어서 우는데
느티나무는 울지 않는다
나는 찾고자 움직이고
그 사람은 떠나고자 움직이는데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너무 지쳐서 벤치에 누워버렸다
나는 알았다 그리고 배웠다
나무는 울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도 이젠 차라리 죽어서 늘 같은 곳에서
기다리는 느티나무가 되리라
언제나 그랬듯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본다
살아있긴 있구나
찬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어본다
밤새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은
이미 느티나무가 되어 가지에 둥지를 튼
재잘거리는 새들을 받쳐주며 웃고 있었다
/ 2021.08.2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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