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문의 즐거움》을 다시 읽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다시 꺼내 읽었다. 《학문의 즐거움》(김영사, 1992)은 30년 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초베스트셀러 책이다. 이 책은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해 버린 어느 늦깎이 수학자의 인생 이야기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유년학교 입시에서 보기좋게 물먹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꾸었던 곡절 많은 소년.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었고, 대학 삼학년이 되어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를 따내고, 수학의 노벨상이라 하는 필즈상까지 받은 사람. 골치 아픈 수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한 평범하고 희한한 수학자. 이렇게 저자를 소개하는 책 《학문의 즐거움》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어 본다.
◇ ‘필즈상’을 수상한 히로나카 헤이스케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1932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음악가를 꿈꿨다고 한다. 교토대 이학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좌교수로 초빙되었다고 한다. 1970년 필즈상을 수상했는데 일본에서 두번째 수상자라고 한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rields Medal)은 국제수학연맹(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수학자대회(ICM)에서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 4명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필즈상은 캐나다의 수학자 찰스 필즈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 기금으로 만들어진 상인데 1936년 처음 시상되었으며, 노벨위원회와는 관련이 없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1970년 프랑스 니즈에서 개최된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 허준이(38) 스탠퍼드 교수가 30대 초반의 나이로 수학계의 난제였던 ‘로타 추측’을 증명하는데 성공하면서 2022년 필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그는 수학에 관심이 없는 소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일컫는 말)였고 오히려 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서울대 재학시절 세계적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되면서 그는 수학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은 2015~2019년 서울대 수시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위권에 들어 있다.
참고로 2020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1위는 쟝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였다.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데미안(헤르만 헤세), 죽은 시인의 사회(N.H.클라인바움),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84(조지 오웰)이 2위에서 10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변신(프란츠 카프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클라우스 슈밥),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코스모스(칼 세이건)이 11위에서 20위였다.
이 책은 4장으로 되어 있다.
1. 배움의 길
2. 창조의 여행
3. 도전하는 정신
4. 자기 발견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라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창조의 기쁨과 괴로움
체념도 필요하다
나무와 숲을 함께 보려면
단순하고 명쾌하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
역경을 반가워하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나의 재산은 끈기
새로운 나의 발견
묻고 듣고 또 묻고
넓은 시야, 다양한 생각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우자
◇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분밖에 기억해 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고생을 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배운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결코 손해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단 잊어버린 것을 필요해 의해 다시 꺼내려고 할 때, 전혀 배워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경험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최소한의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 별 고생 없이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혜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지혜에는 배운 것은 잊어버려도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넓이’와 대상을 깊이 살펴보는 ‘깊이’라는 측면이 있고, 결단력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지혜의 넓이와 깊이와 힘을 얻기 위해 즉 ‘지혜를 얻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답한다. 또한 학문은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인데, 이 과정에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배우는 일은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 창조하는 즐거움과 기쁨
저자는 “창조하는 즐거움과 기쁨. 그것은 자기 속에 잠자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쁨이다”라고 말한다.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창조는 결코 음악가와 화가, 예술가, 학자, 발명가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평범한 우리들이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창조다. 사진을 찍고 블로그를 하고, 나만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창조다. 어쩌면 우리의 사소한 일상들이 모두 창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부단히 무언가를 쌓아올리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창조하는 과정에서 내 속에 잠자고 있던 것을 발굴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창조하는 기쁨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스스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이 나이에 뭘 더 배워, 뭘 또 새로운 걸 배우느냐?”라고 말한다. 배우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또다시 많이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창조의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계속 배워야 한다. 배워야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창조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사인을 원할 때 ‘소심심고’(素心深考)라고 쓴다. 이렇게 쓰는 까닭은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라’라고 내 자신에게 항상 타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눈앞의 일이 복잡하고 실타레처럼 얽혀있을 때는 단순 명료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소박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들이 의외로 쉽게 풀린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이다.
◇ 나의 재산은 끈기
그는 자신의 재산은 ‘끈기’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와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왔다고 한다. “나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은 사람이 일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하고야 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배어서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늦깎이지만 수학의 천재들만이 받는 수학의 노벨상, 필드상까지 받은 그가 스스로를 보통의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 그런 그도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더 투자한다는데 정말 보통의 두뇌를 가진 우리들은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
◇ 때로는 체념도 필요하다
또한 그는 “때로는 체념도 필요하다. 경쟁자에 대한 질투는 오히려 목표를 흐리게 한다. 체념의 기술, 그것은 창조와 관련된 정신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며, “체념이라고 하면 왠지 소극적인 것 같이 들리지만 좋은 것을 창조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체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런 우수한 사람들을 질투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 에너지를 갈아먹는 것이라는 것이다.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잡면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기고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자기의 정신 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는 일이 없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마음 깊숙이 와 닿는다. 또한 그는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난 바보니까’를 중얼거린다. 어차피 나는 바보니까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고 한다.
◇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얻은 교훈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에세이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크게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많이 배우고 잊어버리고 또 배워라. 그러면 ‘지혜’의 넓이와 깊이, 지혜의 힘 즉 결단력이 생긴다. 둘째, ‘창조’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려라. 잠자고 있는 재능과 자질을 찾아내라.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셋째, 끝까지 꾸준히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라. 노력이라는 말은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평범한 보통의 두뇌를 가진 사람은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 투자를 하는 수밖에 없다.
체념의 기술, 체념하는 기술을 배워라. 이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 부자인 사람들, 인생 운이 좋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돈 많고 돈 잘 버는 사람, 재물운·사업운·부모운·결혼운·자식운·명예운 등 인생운이 좋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질투하는 것은 정신에너지를 갉아먹는 것이다. 질투하지 말고 체념하라.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목표를 확실히 잡으면서 포기하라.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긴다.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나의 정신 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지 않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목표를 세우고, 내게 주어진 내 인생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체념하는 기술을 배우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좋아하는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을 되뇌어 본다.
“신이시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옵소서. 무엇보다 저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하락하소서.” ㅡ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 中에서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ㅡ Reinhold Niebuh
“배움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 2021.08.12(목) 김영택
https://blog.daum.net/mulpure/1585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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